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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22. 2024

떠나기 전 마지막 장면을 찍어내다.

자리비움

여러분은 어딘가에 있다가 그 공간을 떠날 때,

‘가자’라고 말하며 쉽게 자리를 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게 잘 안되거든요.

특히 제 마음이 담겨있는 곳, 저의 기억이 담긴 곳을 떠날 때에는 더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인천에서 살았습니다.

고향이 인천은 아닌데 제 기억 속 처음은 인천입니다.

그곳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즈음에 지금 부모님 댁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 밤을 가족 다 같이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가 밤새 피를 토해낸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던 중, 다행히 언니 덕에 미리 본 기억이 떠올라 ‘아! 나도 이제 여자가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엄마에게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언니는 아이에서 벗어나 여자가 된 날 이모에게서 수영복을 선물 받았는데, 나는 무엇을 받을까 기대했었죠.

피는 무섭지만 선물을 기대하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저는 결국 선물을 받지 못하였죠.


이날 저는 제가 기억하는 첫 집인 인천 집을 눈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요.

집에서 각 공간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예요.



인천에서 살던 집은 좋았는데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니 주거 공간이 좋지 않았습니다.

1층이어서 고양이 울음소리도 자주 들리고 벌레는 창문을 통해 자꾸 기어들어왔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집 자체도 오래된 데다가 5층짜리 건물이었어요.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아시겠죠?

체리 몰딩 인테리어로, 다홍색이 가득한 부엌은 또 어찌나 후져 보이던지.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싫은 티를 팍팍 냈을 겁니다.

그래도 잘 알았죠.

이제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요.

또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잖아요?

저는 곧 잘 익숙해지고 친구도 만들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부모님도 노후된 집이 싫기는 매한가지였나 봅니다.

몇 년 살지 않았는데 이내 같은 동네지만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지금 부모님 댁이기도 하고, 이제 제가 다시 몸 담고 살 곳이기도 합니다.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서 또 올해 안에 이사를 해야겠지만, 저는 아직도 지금 집에는 정이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 재건축 때문에 이 집을 떠나게 된다면,

‘아이고 드디어 나가는구나.’ 하고 속 시원히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꽤 많은 동네를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부천에서는 고시텔에 산 적도 있고

공항 근처에서도 4곳의 오피스텔을 전월세 번갈아가며 살았었죠.


제가 살았던 곳들이 다 후미진 지역이라 그런지,

저는 신축보다 이런 사람 냄새나는 곳들이 좋습니다.

신도시를 가면 왠지 황폐한 죽은 도시 같은 기분이 든달까요?

혹여 신축에 사시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기분 상해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제 작은 견해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또 저는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 금세 신축 문물에 눈이 멀어 구축을 멀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제가 약 7년간 몸담은 곳을 떠나

내일 부모님 댁으로 가기 때문에

마지막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더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오늘 하루종일 짐을 싸느냐 그리고 내일 이사를 해야 할 생각에 막막해서 이 정도로 글을 마치려 해요.

다음 글 작성할 때 더 이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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