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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Apr 03. 2024

세척 사과 시킨 사람?


‘카톡’

가족들이 함께 모인 단톡방의 알람 소리가 울렸다.


’세척 사과 시킨 사람?‘

엄마가 고요한 단톡방에 질문을 던졌다.


엄마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나는 주문한 적이 없음을 재빨리 밝혔고,

이어 언니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늘 그렇듯 본인과 관련 없는 이야기에

묵묵부답으로 화답했다.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두 다리 뻗고 누울 줄 알았던 엄마는

도통 되찾아가지 않는 사과 박스에

불편한 기색을 비췄다.


… 뚜루루루… 뚜루루루…


“어, 엄마 왜 전화했어?“


“사과 주인이 상자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안 찾아가.

어떡하지? 이거 사과라 오래 여기 두면 상할 텐데. “


“택배 도착하면 도착했다고 문자 갔을 거야.

본인이 잘못 주소 적은 거 확인하면

회수하든가 가져가겠지. 그냥 문 앞에 둬~“


“알겠어~”



엄마의 ‘알겠어’는 거짓말이었다.

급기야 사과 상자에 적힌 사과 가게에 전화해서

오배송이 된 사실을 밝혔고

주문 정보를 상세하게 말하며

주인에게 제대로 배송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업체 측에서는 주문을 받은 대로

배송을 한 거라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귀찮다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

며칠간 골머리를 앓았던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지금 나랑 상관도 없는 일에

이렇게 전화해서 알려줬으면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 이야기는 문 앞에 여전히 놓인 사과 박스를 보고

질문을 던진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는 씩씩대며 분노를 되새기듯

통화의 내용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고

맞장구치며 엄마의 화를 식혀주었다.


이 ‘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주문을 잘못했지만 찾아가지 않은 주문자

(꼭 본인의 집에 주문했으리란 법이 없긴 했다.

선물로 보낸 것이었다면 그대로 둘 수밖에),

택배를 오배송했는지 알 수 없는 택배기사,

(10년 넘게 산 집이기에 전 집주인이

잘못 주문했을 리는 없을 터였다),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긴 사과업체,

사과가 썩든 말든 오지랖 아닌 오지랖을 부린 엄마.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오배송한 것을 알았을 때

회수를 부탁했으면 되었을 주문자,

사과 한 마디와 감사인사 한 마디의

별거 아닌 친절함으로

엄마를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던 사과업체,

본인의 행동에 어쩌면 감사를 바랐을 수도 있을

엄마의 작은 욕심이 섞인 기대.


각각의 상황을 알 수 없기에

함부로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었던 나.

누구에게 이 ‘화’의 책임을 물어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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