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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Dec 04. 2024

참 많은 일

보고 싶은 삼철이에게


굉장히 오랜만이다. 얼마만인지… 기억하기두 힘들다.
네 주소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어. 지금두 주소는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편지만 쓰는 거지. 곧 나올 거라 생각하믄서.
아냐, 우여곡절(?) 끝에 네 자대주소 알아내기는 했어. 근데 왠지 느낌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작은형한테 호출 올 때까지 기다리구 있어. 실은 네 아버지가 주소 불러 주셨거든. 어떻게 된 내용인지는 특박 나오면 그때 얘기해 줄게. 생소한 이름을 들으면 감이 갈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너한테서 음성이 2번 왔었잖아. 무지² 반갑더라. 꼭 네가 옆에 있는 것만 같았어. 그냥 아까 헤어지구 호출하는 사람처럼 시간의 거리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구. 물론 넌 그 시간이 가도록 얼마나 지루했겠느냐만은…. 목소리 좋은 거 같더라. 너 첨에 특박 나오고 귀대할 때 그때도 2번 음성 넣었잖아. 그때랑은 분위기가 180˚ 틀리던걸. 그땐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왠지 울먹이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어. 근데 지금은 무척 밝드라.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더라.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 

너한테 편지 못쓰는 동안 적어도 나한테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났어. 무슨 일이 있었냐구? 지금부터 얘기해 줄게. 근데 이렇게 해놓으면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우선, 나 아르바이트 그만뒀어. 그럼 지금 뭐 하냐고? 나한테 딱 맞는 자리를 왜 그만뒀냐구? 후훗.. 
실은 회사에 입사했어. 9/14 날 첫 출근 했어. 벌써 2주째야. 시간 진짜 빠르지? 벌써 2주야. 너 나올 때 되믄 3주째다. 내가 했던 일과는 전혀 달라. 그래서 지금 처음부터 일을 배우는 그야말로 신입이야. 안 쓰던 머리 하루종일 굴려 댈려니 힘들어 죽겠어. 하루종일 하는 건 없는 거 같은데 왜 이리 피곤하고 지치는지 몰라. 예전보다 잠두 더 많이 자는데 아침이면 눈을 못 뜨겠어. 전쟁이야.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이렇게 가다간 내 머릿속이 엉켜버릴 것만 같아. 그러고 보면 예전의 직장은 참 편했는데-. 그때도 물로 그때 나름대로 힘들긴 했지만 그래두 동기가 많아서 좋았었어. 근데 여긴… 물론 좋지, 요즘 같은 세상에 직장을 구한 것도 어딘데… 감지덕지해야 하는 거니? 모르겠어. 나두. 굉장히 부담이 많이 돼. 더더군다나 하루종일 내 시간이라곤 단 10분도 없어. 물론 이런 회사가 정상적이겠지. 하지만…
암튼 옆에선 자장가 소리도 들리구. 웬 자장가냐구? 전화받으면 일어, 영어, 중국어… 끄악…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하지만, 것두 노력 없으면 힘들지. 나두 외국어 공부 좀 해야겠어. 좌우지간 나두 모르게 불평불만에 힘들다는 소리 투성이야. 이러믄 안 되는데…

처음 며칠은 정말 힘들었어. 그래서 아는 사람들한테 푸념을 눌어 놓으면 위로는커녕 ‘요즘 같은 시기에 들어가는 것 만두 어딘데 꾹 참아봐라.’ 이런 얘긴 누구한테나 듣는 거 아니니? 난 결코 이런 얘기 들으려구 푸념들을 늘어놓은 거 아닌데, 격려해 주는 사람 하나 없더라. 참 슬펐어. 내가 처한 위치 상황도 이해 좀 해주지… 그때 네 생각이 났어. 너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내 생각엔… 너두 똑같을 걸. 넌 한술 더 뜰 거 같어. 못된 것…

참 많은 일이 있었다구 했는데 졸려서 다 못 쓰겠다. 아마 앞으로 편지 많이 못 쓸지도 몰라. 하지만 이해해. 어서 자야겠다. 낼 또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해야지. 
그럼 너두 잘 자.


1998. 9. 26.


P. S. 나 휴대폰 샀어. 실은 생일선물 받았어. 친구들한테
혹, 내 생일 기억하니? 할리 없지, 가르쳐 준 적 없으니까.
전화번호 가르쳐줄게
H.P.  017 - 394 - **** 
O.P.  783 - **** (여의도야. 사무실이)



수일 전에 쓴 첫 답장은 전하지 못한 것 같다.

헌병교육대 수료 후 자대에 배속되었으나 외부와의 연락은 어려워 편지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충주 제19전투비행단에 배치되는 십여 명의 동기들과 비행단 적응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시기이다. 그녀의 얘기처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편했던 때로 목소리도 밝았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회광반조란 말이 잠시 떠올랐다. 나는 상항에 딱 들어맞지 않는 괴이한 생각을 자주 한다.


약 2주가량 부대적응을 위한 교육, 견학, 활동 등을 했던 이 시기에 남아있는 기억은 하루 동안의 장애인 시설 안에서의 봉사활동이 유일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함이 있는 분들과 함께 움직이고 음식을 먹여드리고 씻겨드리기도 했다. 주로 아이들이었고 당시의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분들도 계셨다.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간 그곳에서 처음 나를 맞은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쿵! 쿵! 하는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였다. 알고 보니 자폐를 앓고 있는 한 분이 방바닥에 약 30초가량의 간격을 두고 자신의 머리를 주기적으로 찧는 소리였다. 그것은 종일 멈추지 않았다. 동기와 함께 사지가 불편한 성인 남자분을 목욕시키는 일은 참 쉽지 않았다. 비교적 거동이 자유로운 아이들과 놀기도 했는데, 그중 말 외에는 특별히 불편함이 없는 예닐곱의 여자아이가 특히 나를 잘 따라 주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갈 때는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나 떠나올 때는 매우 고요했다. 처음에는 반가움을 표현한 것이었고 지금은 서운해서 조용하다는 시설장님의 말씀이었다. ‘건강히 군생활 잘하시라’는 인사를 끝으로 그곳을 떠나왔다. 


그 여자아이는 나와 마지막으로 두 손을 잡을 때 눈물을 글썽이더니 손을 놓고 흔들자 엉엉 울어버렸다. 소녀에게 몇 번이고 손을 흔들고 작별의 말을 하며 떠나오는 나 또한 눈가가 촉촉해졌다. 헤어짐이 서운하고 아이가 가엽기도 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목전의 시간들에 대한 우려도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나는 소녀의 눈물과 같은 한 여인의 눈물을 보았다.

대략 27개월 동안 6주에 한 번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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