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살아진다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가던 중 근처 공원에서 잠깐 차를 세웠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시면 다시 이런 시간을 갖기 힘들 것 같아 간단히 드실 음식을 준비했었다.
병원에서는 아버지가 매끼 식사에 간식까지 잘 챙겨 드신다고 말했었는데, 아버지는 며칠이라도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음식을 드셨다. 평소에 달다고 잘 안 드시던 빵도, 아이가 세상 처음 맛보는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감동까지 해가며 정신없이 드셨다.
우리는 아버지가 드시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짠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드시던 아버지는 얼추 드셨는지, 편안해진 모습으로 그제야 우리를 보시고 입을 여셨다. 고맙다고 빨리 나아서 집으로 가시겠다고.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올까...
치매만 아니라면 아버지를 이렇게 혼자 집 밖으로 내돌릴 이유 없다. 나이도 있으시고 지병까지 있으신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는가. 치매라도 아빠처럼 감당하기 힘든 증상만 아니라면 사람을 써서라도 집으로 모시고 싶다.
간식으로는 부족한 듯싶어 아빠에게 순댓국에 커피 한잔 하고 가시자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지치셨는지 피곤하다고 얼른 가자고 하신다. 이대로 요양원에 입소하면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진 식사 한번 같이하기 힘들 것 같아, 다시 한 번 권해보았지만 아빠 눈꺼풀이 이미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시립요양원은 입소 전 상담조차 일반 요양원과는 달랐다. 물리치료사, 영양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하고, 상담을 통해 면밀히 살폈다. 또한 보호자의 요구사항도 귀담아 들어줬다.
난 아버지가 화장실을 스스로 갈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 수면제를 과다 투여 하지 말아 달라, 묶지 말고, 욕창에 신경 써 달라는 것 등을 부탁했다.
아빠가 계실 곳은 4인실로 넓지는 않았지만, 방안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넓은 홀에는 어르신들이 나와 TV를 시청하고 계셨다. 아버지도 그분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TV를 보게 해드리고 우리는 요양원을 나왔다.
이곳에서는 제발 아프지 말고 편하게 잘 지내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닌데 최근에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자꾸 무작정 기도를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만심이 무너지자 내 앞에 닥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매달리고 싶다.
이러한 마음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며칠 후, 난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면회 갔다. 아빠는 우리를 보자마자 대뜸 눈물을 글썽이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더럭 겁이 났다. 아빠는 눈물을 훔치며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이라고 속삭이신다.
하느님...! 아버지 입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낯설다. 아버지도 나처럼 딱히 종교랄 것이 없으신 분이셨다. 종교적 활동은 연중행사로 엄마와 함께 석가탄신일에 절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다인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간절하게 하느님을 부르고 계신다.
아버지는 우리를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며 드디어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감사해하셨다. 이곳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비대면 면회가 가능해 우리가 자주 찾아오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잊어버리신 것 같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한다. 아버지는 아직도 처음 요양원 갔을 때의 악몽에 사로잡혀 계신 것 같았다.
“아빠, 여기는 면회 되니까 우리가 자주 면회 올 거라 했잖아”
"안 오는 줄 알았다. 오후에 면회 온다 길래 거짓말하지 말라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 오다니...아... 감사합니다.”
또다시 버려졌다는 공포감에 불안해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조금 더 일찍 면회를 갔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진정되시는 것 같았고, 다음에 면회 오겠다는 약속에 못내 아쉬운 얼굴로 들어가셨다. 또 다시 이 약속은 잊어버리고 처음 요양원에 계셨을 때의 악몽만을 기억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그 당시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잊히지 않는 끔직한 악몽 같은 시간을 드린 것 같아 못내 죄송스럽다. 사실 그 시간들은 내게도 악몽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아빠를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울다가 심장이 찢어져 버릴 것 같은 아픔에 가슴을 움켜쥐고 뒹굴기도 여러 번. 아빠가 어떻게 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감당하기 너무 버거워 그냥 모든 것을 그만둬 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 아픔 또한 점점 익숙해져 고통의 칼날이 무뎌져갔다.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지만, 심장이 찢어져버릴 것 같은 고통은 사라졌다.
이렇게 또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