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집사 Jun 08. 2024

나의 반려견은 마음이 조금 아프다.

정답을 찾아 떠난 4년 간의 여정 (1)

나의 반려견 '하이'는 마음이 조금 아프다.

조금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은 세상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더 힘든 반려견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엄살을 부릴 수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이'는 행동전문 동물병원에서 범불안장애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판정을 받았다. (소견서에는 '후천적 교육, 트라우마 문제로 보이지 않는 선천적인 범불안장애와 가까운 상태'로 표현되었다.)

범불안장애는 한 가지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문제, 활동, 상황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을 말한다.

'하이'는 아주 작은 낯선 소리에도 심하게 깜짝 놀라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사람, 낯선 동물에 대해 심한 경계 반응을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겁 많은 다른 반려견과 다르지 않다. 이 정도였으면 장애 (Disorder)로 판정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이'는 낯선 장소나 사람을 자주 만나더라도 똑같은 거부반응과 스트레스를 보인다.

또한 두려워하는 대상이 특정한 몇 가지가 아니고 광범위하게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패턴도 없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차량에 대해서 어느 날은 과도하게 반응하고 어느 날은 그냥 잘 지나가기도 한다.

가장 주의하고 있는 점은 보통은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도망가는 것을 선택하지만 임계치를 넘으면 이성을 잃고 달려들고 짖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겁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굉장히 겁을 먹으며 우리 집은 '사람은 매가 약일지라도 동물은 혼내지 말자'는 주의라서 혼내거나 화를 내지 않는데, '하이'는 내가 한숨만 쉬어도 바로 도망간다.

그리고 같이 사는 고양이 '나나'를 여전히 무서워한다. '나나'가 공격적이냐고? 전혀! '나나'는 이미 하이가 입양된 후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하이'를 새로운 집의 구성원으로 인정했지만 '하이'는 여전히 나나 앞에선

구석에 몰린 쥐와 같이 긴장하고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런 모습을 너무 오래 봐서 그런지 사실 나는 '하이'가 범불안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놀라거나 슬프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이'를 반려하면서 보여왔던 이런 반응들이 다른 반려견들과 확연하게 차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내가 배워왔던 교육 이론이나 실제 필드에서 다른 반려견을 교육하며 효과가 있었던 교육을 적용해 보아도 '하이'에게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일반 보호자가 아니라 반려견 트레이너다.


'하이'를 입양할 당시 나는 정말 왕초보 반려견 트레이너였다. (지금도 대단한 트레이너는 아니지만...)

왕초보 트레이너는 보호자를 만나고 상담할 기회도 다른 개를 교육시켜 볼 기회도 현저하게 적다.

무엇보다 보호자와 상담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반려해 본 적이 없는 트레이너라면 금세 티가 나고 보호자에게 신뢰를 주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쳐서 나에게도 반려견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반려묘 '나나'도 있었기에 새로 입양되는 반려견은 흥분도가 너무 높지 않고 짖음이 적고 얌전한 반려견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여러 반려견을 만나보았지만 어린 강아지 중에서는 나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만한 강아지를 찾기가 힘들었다.

여러 달을 열심히 찾아다니다 어느 한 전문견사*에서 조건에 딱 맞는 '하이'를 만난 것이다.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이 되어 심사숙고 끝에 '하이'를 전문견사에서 입양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반려견이자 파트너가 되어줄 '하이'를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최고의 반려견으로 키우겠다는 의욕이 충만했다.

"2주 정도의 적응기를 준 이후에 이 것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이런 교육을 해야지!"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가며 '하이'가 적응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2주가 지났고 나의 계획은 시작부터 처참히 어그러졌다.

나의 기준에서는 '하이'가 집에 온 이후 모든 생활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린 강아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타견에 대한 반응, 소리에 대한 반응 등이 조금 심했다.

전문견사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보던 사람, 같은 종의 개, 조용한 산속에서만 지내서 발현이 안 되었던 것이 도시로 나오자마자 발현되기 시작했다. (물론 하이는 질병이기에 어린 시절처럼 심하진 않아도 남아있다.)

의욕이 넘쳤던 나에게는 이런 상황은 초조함과 조급함으로 다가왔다.

트레이너의 반려견으로서 모든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고작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집에 적응을 못 하다니!

그렇게 1달가량 기다리다 초조함이 폭발한 나는 사회화*라는 명목 하에 '하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적응을 강제로 돕기 시작했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고 배우고 익힌 교육 이론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3개월가량을 그렇게 각종 트레이닝 센터, 반려견 운동장, 카페, 펜션 같은 새로운 장소에 많이 데려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

도망가려 하면 붙잡고 혹여나 타견, 타인 반응을 보이면 줄을 짧게 잡고 “그냥 나랑 있어!” 하며 강제적인 적응을 요구했다. 또한 ‘하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간식을 얻어먹게 하고 먹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잘 되지 않을 때마다 아쉬움의 한숨을 쉬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지만 '하이'는 그럴수록 적응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이 것은 마치 아기 아빠가 걸음마를 갓 뗀 아들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아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질질 끌며 자기 속도로 걸어가는 모습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는 다른 반려견이나 보호자에겐 혼내지 않는 교육을 가르치는 트레이너였지만 나의 개한테는 폭군 같은 트레이너였다.

출처 : 그리샤 스튜어트 아카데미

내가 ‘하이’에게  한 짓들은 제로썸 혹은 마이너스였다.

반려견은 두려움과 공포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학습을 할 수 없다. 위 그림의 초록색, 파란색에 표시된 상태일 때만 학습을 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내가 실전에서 제대로 교육할 수 없는 이론만 아는 글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숙련된 트레이너라면 반려견을 만나고 그 성향에 따라 교육의 속도, 방향을 그때그때 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하이'는 그 당시에 자신만의 속도로 인간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입양 후 첫 산책 때 계단을 내려가다 무서워서 대변을 지렸지만 어느새 계단에 적응해서 잘 나가게 되었고, 나름대로 잠도 잘 자고 사료도 잘 먹기 시작했는데 그저 내가 초조하고 조급했던 터라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도를 더 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이'를 트레이너의 반려견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둔 이후부터 나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보호자도 파트너도 아니게 된 것이다.


오늘의 Key word!
1. 두려움, 공포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반려견이 학습하기 어려우며 교육을 위해 계속해서 그 상황에 노출시키는 것은 효과가 없거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반려견을 사람의 생각에 따라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반려견 사회화 : 반려견 사회화는 외부 자극에 반려견이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다. 전문가들은 사회화가 예방접종과 영양만큼이나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전문견사 : 펫샵과 다르게 보통 1개의 견종만을 전문적으로 육종 하는 곳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전문견사는 무분별한 번식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