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엄마, 불안한 아들키우기

이런날이 올줄이야!

by 원정미
"First of all, we are so happy to have him in our class. He's a such good student. He's very sweet and very respectful to others and he's doing really well so far. So we don't have any big worries for him"
( 먼저 우리는 00이 우리 반에 있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00는 매우 좋은 학생입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지금까지 너무 잘하고 있어서 우리는 00에게 큰 걱정은 없습니다.)

지난주 나의 둘째 아들의 첫 중학교 선생님과의 컨퍼런스 (면담)시간에서의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 그녀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리고 그 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보낸 11년간의 나의 고군분투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사실 중학교를 올라가기 몇달전까지도 나는 아들이 미국 일반 중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고민하기도 했다. 아들은 배우는 것이 무척 느렸고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적응력도 낮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5년 내내 선생님으로 부터 걱정스러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매년 학년이 올라갈때마다 누구랑도 말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친구도 사귀지 못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은 반이 바뀌면 말을 하지 않아서 늘 영어를 못하는 금방 이민온 학생으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히 학업수준은 늘 또래 학생들에 비해 뒤쳐졌다. 그래서 소아정신과를 가보기도 하고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다들 약간의 불안장애와 집중력 장애가 증세가 보인다고 했지만 진단을 내릴만큼 심각하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공부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표현이 무척 서투른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 또래 학생들이나 상급학생들의 타겟이 되기 너무 쉬운 상대가 될까 더 걱정했다. 그래서 그런 트라우마가 생기기전에 좀더 안전한 방법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일단 아들이 적응을 잘 할수도 있으니 지켜보자며 만류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옮겨도 늦지 않다며...


그랬다. 아들은 무척 예민하고 불안한 아이였다. 태어날때부터 유달리 변화를 싫어했다.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킬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낯가림이란 것이 아예 없었던 큰 딸과 달리 아들은 가족을 제외한 누구의 손길도 눈맞춤도 거부했다. 그래서 오래다닌 교회에서도 그 누구도 아들을 한번 안아볼수 없었다. 아들의 기저귀나 옷을 갈아 입힐수 있는 사람은 남편과 나 그리고 할아버지 밖에 없었다. 이런 성향 때문에 나는 아들이 자폐스펙트럼이 아닌지도 걱정했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있으면 너무 평안하고 눈 맞춤도 잘하고 방긋방긋 잘 웃고 옹알이도 잘하는 그야말로 해피베이비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들의 기질은 매우 예민하면서 불안한 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특별히 생후 3년동안 아들에게 부모와 가정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되게 해주려 무척 애를 썼다. 그래서 그때 당시 다니던 미술 대학원도 될수만 있으면 온라인 수업으로 돌리고 학교를 가야 하는 시간을 줄였다. 그렇게 정말 3년을 원숭이가 새끼를 끼고 살듯이 그렇게 아들에게 안정된 애착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당시 육아서적을 닥치는 데로 읽으면서 아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그러나 또 나에게 너무 의존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아들은 집에 있을때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아빠와 엄마랑 있을때 가장 잘놀고 잘 먹고 잘 잤다.


그러나 아들이 점점 크면서 육아는 나에게 도전이 되었다. 큰 딸아이에겐 가르쳐본적도 없는 것들을 아들에게 일일이 하나하나 가르쳐줘야만 했다. 아들은 모든 면에서 딸에 비해 뒤쳐졌다. 딸 아이에겐 가르쳐본 적도 없는 숟가락 잡기, 옷입기, 양말 신기, 신발신기 등을 여러번 나누어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했다.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아들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아들의 아이큐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나와 애착만 잘 형성되면 아들의 불안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불안함은 그의 기질에서 시작한 것이였고 그의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그 불안은 급격히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바라보며 매일 좌절과 새로운 다짐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들이 네살이 되어갈 쯤에 상담심리 대학원으로 진학한 이유중 하나도 아들을 제대로 알고 키워야겠다는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을 나처럼 불안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이 될때까지 나의 불안때문에 무척 괴로워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불안의 시작은 어린 시절 내내 집안에서 끝이지 않던 고부간의 갈등 그로 인한 부모님의 갈등 때문인 줄 알았다. 그로인해 나는 부모와 불안정한 애착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오래도록 나의 마음과 인간관계에 상채기를 남겼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불안을 대물림 하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가정은 아이들에게 평안한 장소가 되도록 노력했지만 아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리상담 대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운다면 나의 불안과 아들의 불안을 제대로 고칠줄 알았다. 1-2년만 더 고생하면 기적처럼 평범한 아이가 될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다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심리 상담 대학원에 가서 배웠다. 그래서 엄마로서 나의 역할은 아들을 향한 나의 터무니 없는 기대를 낮추고 아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수있도록 도와주는 일뿐이였다. 그렇게 포기하고 이해하고 조율하는 시간이 11년이 넘게 걸렸다.


사실 아들은 지금도 다른 아이에 비해 특출나거나 재능이 뛰어난 아이는 아니다. 지금도 새로운 환경을 싫어하고 배우는 것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아이이다. 그래서 설득과 대화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그를 생각하면 지금의 그의 모습은 놀라운 성장이고 변화이다. 당연한 것이다. 아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자라고 있었으니.. 엄마인 나만 조급하고 안달냈을 뿐이였다. 아들의 육아는 그야말로 나의 인내심을 자라게 해주는 과정이였다. 그리고 불안한 아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지 날마다 배우는 과정이였다. 그 과정을 앞으로 이 글에 나누고 싶다. 그래서 지금 혹 불안하고 예민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작은 도움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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