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력 또 관찰력
아들은 자라면서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언어도 느리고 소근육 발달도 느렸다. 거기다 큰 딸은 만 18개월만 되어도 스스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시도했다. 뭐든 스스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유식을 시작하고도 아들은 늘 받아먹는 것을 선호했고 스스로 숟가락도 잡지 않았다. 만 3세가 다 되어도 스스로 옷을 입거나 양말을 신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에게 " 이렇게 옷 입어봐, 이렇게 양말을 신는 거야" 하는 식의 가르침은 통하지 않았다. 아들은 넘지 못할 산에 와있는 것처럼 당황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들은 나누어 설명하고 가르쳐야 했다. 옷의 앞뒤를 구분하고 머리는 어디로 나오고 팔은 어디로 나오는지. 양말을 위아래를 설명해 줘야 했고 맞게 신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 번 가르쳐야 했다. 그렇게 설명해도 아들은 늘 양말을 뒤집어 신거나. 옷을 거꾸로 입고 나오는 적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들을 키울 땐 어마어마한 인내심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