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필요한 기술

관찰력 또 관찰력

by 원정미

육아를 하는 것은 마치 처음 보는 씨앗을 키우는 것과 비슷했다. 누가 이건 딸기 씨앗이고 고구마 씨앗이니 이것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시키는 데로 하면 쑥쑥 잘 크는 그런 농사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식물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키우는 농사와 같았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토마토처럼 씨만 뿌려도 잘 크는 아이들이 있고 난초처럼 습도, 햇빛의 양, 물의 양 등을 세밀하게 보살펴야 잘 크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니 아이를 성공적이고 훌륭하게 엄마들의 육아서적은 사실 나의 육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에 나온 엄마의 기질과 나의 기질이 달랐고, 아이들도 다 달랐다. 거기다 아이들이 타고난 재능과 능력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오히려 좌절감만 더 커질 뿐이었다. 큰애를 낳고 나 또한 어느 정도 육아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둘째와 셋째를 낳고 당황스러운 것은 매 한 가지였다. 그것은 세 아이의 기질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가 힘든 것이다. 전에 했던 농사법이 이번 씨앗에도 맞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아는 나의 아이에 맞는 맞춤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자녀를 향한 육아의 철학과 원칙은 동일했지만 아이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세 아이 모두 달랐다. 어떤 아이는 좀 더 자유롭고 선택적인 훈육이 통했고 또 누구에게는 좀 더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훈육이 잘 맞았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도 누구는 " 착한 아들, 딸" 이 되는 것이고 누구는 " 문제아에 골칫덩어리"가 된다. 아무리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모두 다른 기질과 성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비슷한 양육과 훈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모와 케미가 잘 맞는 아이들은 잘 따라오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집안에서 문제아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아이를 잘 이해하는 방법은 사실 부모가 아이를 잘 관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물론 아이는 배우자와 나의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비슷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또 전혀 다른 기질과 능력의 아이도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이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거나 불안한 경우는 더더욱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의 행동이 예측하기가 쉽고 거기에 대해 부모가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자신의 육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내 스타일에 맞추고 싶어 한다. 여기서 오는 많은 부모들의 착각은 자신이 자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농사를 짓는 다고 해도 토마토는 토마토로 자라고 사과는 사과로 큰다. 다만 그 식물을 크고 건강하게 성장하느냐 아니면 시들고 병든 열매가 되게 하느냐만 농사꾼에게 달려있다.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자녀의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어린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느냐는 아니냐는 대부분 전적으로 부모의 양육태도에 달려있다.


아들은 자라면서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언어도 느리고 소근육 발달도 느렸다. 거기다 큰 딸은 만 18개월만 되어도 스스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시도했다. 뭐든 스스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유식을 시작하고도 아들은 늘 받아먹는 것을 선호했고 스스로 숟가락도 잡지 않았다. 만 3세가 다 되어도 스스로 옷을 입거나 양말을 신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에게 " 이렇게 옷 입어봐, 이렇게 양말을 신는 거야" 하는 식의 가르침은 통하지 않았다. 아들은 넘지 못할 산에 와있는 것처럼 당황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들은 나누어 설명하고 가르쳐야 했다. 옷의 앞뒤를 구분하고 머리는 어디로 나오고 팔은 어디로 나오는지. 양말을 위아래를 설명해 줘야 했고 맞게 신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 번 가르쳐야 했다. 그렇게 설명해도 아들은 늘 양말을 뒤집어 신거나. 옷을 거꾸로 입고 나오는 적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들을 키울 땐 어마어마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아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단순히 기질이 예민하고 불안한 것을 넘어서는 뭔가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고기능 자폐증인가, 지적장애인가, ADHD는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 면도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안한 아이들과 위에 언급한 진단명들 사이에 공통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들을 세심하게 관찰함으로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아들이 사회성과 언어가 또래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자폐 스펙스럼 아이들이게 흔히 보이는 강박적 행동이나 집착 현상은 별로 없었다. 낯선 사람에겐 경계가 심해도 가족 간에 일어나는 일상 대화나 소통에 이상한 점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사회성이 낮은 것과 사회성이 없는 것은 다른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습 부진아나 지적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한동안 했었다. 뭔가를 배우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빼기를 배우는 동안 더하기를 까먹고 나누기를 배우는 동안 곱셈을 잊어버리는 아들 때문에 나는 황당했던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심각하게 아들의 IQ가 평균 미만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느리긴 하지만 매년 학기말엔 자신의 학년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수업을 따라잡는 속도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빨라지지 시작했고 중학교쯤 되자 평균 수준이 되었다.


보통 지적장애 같은 경우는 평균 또래와 수준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꾸준히 노력했음에도 공부 수준을 금방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만약 자녀의 발달 수준이 또래와 2-3년 이상 차이가 나고 시간이 지나도 또래 수준으로 발달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적 개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ADHD도 의심했었다. 집중력 부족과 과잉행동이 주요인인 ADHD는 정말 불안한 아이들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들이 그냥 불안한 아이인지 집중력 장애인지 알아야 했다. ADHD는 사실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과잉행동이 심한 아이들이 있고 과잉행동이 없음에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다른 사람의 언어나 사회적 신호, 그리고 수업내용을 잘 이해 못하는 형태이다. 우리가 단순히 산만하고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ADHD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집중력 장애도 ADD라 말한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선생님에게 자주 불려 다녔다. 저학년일 때는 아들이 학교를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며 걱정을 했다. 한마디로 아들은 선택적 함구증이었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언어표현력이 떨어지고 수업 과제물을 시간에 마치지 못하고 수업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며.. 그리곤 다들 ADHD를 의심했다. 물론 아들은 수업시간에 전혀 과잉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히 혼자 멍을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집중력에 문제가 있어 보였던 것이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ADHD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뭔가 보통 아이들만큼 평균적인 수준은 아니나 그렇다고 ADHD를 진단 내릴 만큼의 문제는 아니라고 나왔다. 한마디로 아주 애매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그 당시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충분한 연습이었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름대로 아동발달 전문서적을 읽어가며 공부를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을 잘 관찰하는 것이었다. 나의 아들이 어떤 종류의 씨앗인지 내가 스스로 파악해 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씨앗에게 가장 적절한 토양을 만들고 적절한 햇빛과 물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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