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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zzyhyun Nov 06. 2022

파란창고에서 재즈 듣기-37마디

Fred Hersch - <Alone At The Vanguard>


Artist - Fred Hersch


Title : Alone At The Vanguard


Record Date : November 30, 2010 - December 5, 2010


Release Date : March 1, 2011


Label : Palmetto




Personnel 


Fred Hersch - Piano



Track Listing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                


                  Down Home(Dedicated to Bill Frisell)                


                  Echoes                


                  Lee's Dream(Dedicated To Lee Konitz)                


                  Pastorale(Dedicated to Robert Schumann)                


                  Doce De Coco                


                  Memories Of You                


                  Work                


                  Doxy                




이번 리뷰는 앨범 전체에 대한 글로 갈음한다.



 한 명의 음악가가 내부에 지니고 있는 개념과 생각들을 온전히 밖으로 꺼내놓는 데에는 꽤 지난한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다. 그의 생각들이 몇 개의 음악적 도전으로서 팔의 근육과 호흡에 온전히 배이는 것은 도공이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다사다난한 실패를 거쳐 완성되는 일이며, 운이 나쁘다면 그저 실패로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을 음악적인 사건으로만 바라볼 때의 시야다. 이것이 1차적 접근이다. 음악가의 음악은 그의 삶에 의해서도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2차적 접근이다. 그가 어떤 주의-혹은 얄팍한 도그마 정도로만 끝나버리는-와 어떤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혹은 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거친 흐름이나 충동, 추진에 의해 부딪히게 되는 사건들에 의해, 한 명의 예술가는 개성을 획득하고 피아노를 어루만지는 고유한 타건을 얻는다. 삶과 분리된 채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은 없다. 비록 그런 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삶을 잊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일 테니, 삶이 고달플수록 그의 집중은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청중 혹은 대중들에게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 즉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3차적 접근이다. 



 프레드 허쉬의 수많은 앨범, 그리고 다른 피아니스트에 비해 많은 솔로 피아노 앨범 중에서도 <Alone At The Vanguard>는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작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역량에 대한 1차적 접근으로도 그러하고, 그가 삶을 통해 겪었을 고통과 무수한 감정, 생각과 개념들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음을 바라보는 2차적 접근으로도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본 앨범이 많은 대중들과 전문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타 연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하는 3차적 접근으로도 <Alone At The Vanguard>는 프레드 허쉬의 인생에 있어 몹시 중요한 지점임을 확신한다.



 2010년 11월과 12월에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클럽, 'Village Vanguard'(프레드 허쉬도 그 스스로 Village Vanguard에서 연주하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라고 얘기했다)에서 6일 동안 12세트에 걸쳐 벌어진 그의 솔로 연주를 모아 발매된 이 앨범은 스탠더드에 대한 프레드 허쉬 고유의 접근법과 음악에 대한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록된 9곡은 재즈 스탠더드와 더불어 자신이 사랑하는 뮤지션들-빌 프리셀, 리 코니츠와 같은 기성 재즈 뮤지션뿐만 아니라 슈만과도 같은 클래시컬 작곡가까지-에 대한 헌사로 이루어진 자작곡, 'Doce De Coco'와 같은 유명한 Choro(쇼로. 브라질의 도시 음악, 또는 전통가요)까지 포함하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그의 시야를 보여주고 있다(허쉬는 'Fred Hersch Plays Jobim'이라는 브라질 음악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보사노바와 쇼로 등의 장르에 정통하다). 연주자들이 인정하는 'Monk Specialist'로서 연주한 셀로니어스 몽크의 'Work'는 원작자의 개성과 자신의 개성을 절묘하게 혼합시키는 명연이며, 첫 곡인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은 허쉬 고유의 클래시컬 음악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앨범 전체를 통틀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음악을 연주하는 데 있어 그가 꾸준히 유지하는 대위법적 접근이다. 프레드 허쉬의 연주는 언제나 입체적인데, 멜로디와 서브 멜로디 1개 혹은 2개, 베이스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머릿속에 단 한 개의 선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쉬의 양손은 언제나 대화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두 개의 멜로디, 왼손으로도 두 개의 멜로디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피아노 연주는 4성부로 이루어진 합창단을 연상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거나 중복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 허쉬의 즉흥연주는 단선율로 화려하거나 언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이사이마다 단선율로 전통적인 재즈 랭귀지를 연주하거나 속주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컨셉은 코드의 진행을 대위법적인 접근으로 리하모니제이션(화성의 재구성) 하는 것, 코드에서 추리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찾아내는 것에 가깝다. 



 아래에 'Doce De Coco'의 채보 악보를 첨부하겠지만, 들리는 것과 실제 연주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아름답고 명료하게,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음만 있는 것처럼 들리는 멜로디들이 실제로는 피아니스트에게 고도의 손가락 분리와 화성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연주하는 몇몇 피아니스트들이 있고, (브래드 멜다우가 그러하며 그 역시 프레드 허쉬에게 영향을 받았다)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허쉬만큼의 숙련도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는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여기에 폴리리듬과 메트릭 모듈레이션 등을 통해 보편적인 4/4박자를 전혀 새로운 질감으로 재봉질 하는 솜씨가 음악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듣는 이는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듣고 있는 동안에는 그저 시간이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 외에 가능한 일이 없다.



 몇몇 이들이 그의 타임 키핑(템포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스윙 연주에 있어서 강렬함의 부재를 지적하지만, 그와 별개로 허쉬가 현대 재즈 피아노에서 이루어낸 일들은 매우 중요하며 영향력 있는 사건들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란은 허쉬를 '완벽성에 있어서 르브론 제임스와 같다'라고 묘사했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허쉬는 질병으로 인해 2008년 두 달간 코마 상태에 빠졌다. 의식을 찾은 이후에도 긴 투병으로 인해 기존처럼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상태. 그러나 그는 재활했고, 이토록 아름다운 앨범을 내놓았다. 재활했다,라는 네 글자로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좌절, 절망을 설명할 수 없다. 가졌던 것을 잃고, 되찾아야만 하는 마음의 절박함은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허쉬의 자서전 제목은 <Good Things Happen Slowly>.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즐겨 들어왔던 앨범을 소개하는데 문득 그의 자서전 제목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오래전부터 재즈계의 총아였던 허쉬가 건강을 잃고, 음악을 잃고, 삶을 위협받는 단계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서 그제야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긴 투병과 재활을 이겨내고 다시 시작한 그때의 허쉬를 들으며 그것이 무엇일지 대충이나마 짐작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_h3p2_x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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