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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zzyhyun Dec 21. 2022

파란창고에서 재즈 듣기-39마디

Edward Simon-<Venezuelan Suite>



Artist - Edward Simon


Title : Venezuelan Suite


Release Date : January 21, 2014


Label : Sunnyside Records



Personnel


Edward Simon - piano

Adam Cruz - drums

Roberto Koch - bass

Marco Granados - flutes

Mark Turner - tenor saxophone

John Ellis - bass clarinet

Jorge Glem - cuatro

Luis Quintero - percussion

Leonardo Granados - maracas

Edmar Castañeda - harp


 베네수엘라 출생인 피아니스트 에드워드 사이먼. 흑인 뮤지션들이 아프리카 음악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뿌리 찾기'에 정성을 들이는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정을 감행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실이 이 앨범을 통해 맺혔으며, 질 또한 매우 훌륭함이 듣는 이들에게는 행운일 터.

 5번 트랙인 'El Diablo Suite'를 제외하고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에드워드 사이먼 자신의 곡이며, 이름 또한 베네수엘라의 지역에서 따왔다. 10살 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던 만큼 과거의 기억이 아주 희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곳의 음악 또한 희미하게라도 핏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만큼 본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이-어떤 의미에서는 가슴 절절하게-독특한 지역색과 리듬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발매 연도는 2014년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 중심의 음악세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신선함을 느끼고 싶을 때 즐겨듣는 작품 중 손에 꼽는 수작이다.

 최근에 200장 한정으로 바이닐이 재발매된다고 하니 그의 음악과 라틴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구매해도 좋을 것이다.


Track Listing


1. Barinas


 앞으로도 꾸준히 언급하겠지만, 첫 번째 곡인 'Barinas'에서부터 등장하는 에드워드 사이먼의 중요한 작곡적 접근법 하나는 리듬의 분할이다. 한 마디라는 덩어리로 놓인 시간을 3개로 자를 것인지, 6개로 자를 것인지, 아니면 두 마디를 한꺼번에 붙여서 그것을 다시 10개로 자를 것인지 5개로 자를 것인지 결정하는 종류의 문제다.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Barinas'의 인트로는 빠른 6/8 박이다. 그리고 멜로디 역시 3개 단위로 이루어지며 그 느낌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트로 후 이어지는 박자는 3/4 박.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느낌이 가득한 멜로디가 16분 음표와 싱코페이션을 통해 풀어지며 한 개의 박자에 4개씩 세 묶음으로 진행되고 있다. 베이스 역시 크게 움직임 없이 그 느낌을 따라가는 중이다. 그러다가 고조되는 동세에서 멜로디가 6개씩 묶이고 듣는 이는 2 feel(2개의 박동)을 느낀다. 16분 음표가 6개씩 두 묶음으로 묶이니 3/4 박자 길이의 총합은 같지만 3 feel에서 2 feel로 바뀐 셈. 여기에 리듬 섹션이 동세를 변경하면서 6/8로 리듬이 바뀌고, 그 위에서 다시 한번 토속적인 멜로디와 세련된 즉흥연주가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박자를 분할하거나 재통합하는 방식이 본 앨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질감 형성의 방식이다.

 에드워드 사이먼의 피아노 즉흥연주는 쉽게 끓어오르지 않는 노련함으로 절제되고 정제된 방식의 어법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뒤에 등장할 베이스와 쿠아트로의 현란한 연주를 위한 발판이 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래에 그의 솔로 연주 채보 파일과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https://youtu.be/j_DrQoRWidQ 

 

 이 앨범에서 베이스를 맡은 'Roberto Koch'는 베네수엘라 태생의 뮤지션으로 강한 타격감을 들려주는 피치카토를 통해서 거센 느낌의 그루브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특히 그의 즉흥 솔로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싱코페이션을 흔들림 없이 구사하며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Jorge Glem'의 쿠아트로 연주는 이 곡의 백미. 쿠아트로는 푸에르토 리코와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사용되는 10줄짜리 기타인데, 지역에 따라 튜닝 방식이 달라 처음 접한 이들은 쉽게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다. Jorge Glem은 매우 빠른 스트로크만으로 초반의 분위기를 장악하며 이 주법을 통해 멜로디보다는 리듬이 강조되는 '퍼커시브'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현이 연달아 강력하게 진동하는 소리 아래에 하프의 이국적인 선율이 가미되고 베이스가 강제로 떠밀듯이 그루브를 만드니 종종 표현하는 'Drive'라는 말에 어울리는 속도감이 만들어진다. 악기의 구성, 즉흥연주의 순서, 즉흥연주에서의 기량, 지역색을 표현하는 멜로디와 리듬의 흐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한 곡이다.


2. Caracas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이름을 따온 곡. 5/4 박자이며 전곡의 강렬함은 잠시 뒤로하고 끓어오르는 긴장을 억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플룻과 베이스 클라리넷, 테너 색소폰이 한 데 섞여 어울리며 복잡하고 화려한 선율을 연주한다. 5/4 박자이지만 전체적인 리듬의 구성은 8분 음표 4개 2묶음, 8분 음표 2개 한 묶음의 442 그루브를 만들고 있다. 이 아래에 피아노의 대위적 선율이 쌓이고 애상에 젖는 코드들이 진행되면 전에 느껴보지 못한 오묘한 아름다움을 듣게 된다.

 쉽게 듣기 힘든 베이스 클라리넷의 즉흥연주도 이 곡의 매력 중 하나이다. 색소폰에 비해 부드럽고 둥글면서도 저음역에서 특유의 음색을 자랑할 수 있는 악기가 John Elilis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이토록 고상하면서도 우아하며 섬세한 조화의 바탕에는 Adam Cruz의 드러밍이 있는데, 이미 에드워드 사이먼과 많은 합을 맞춰왔으며 특히 라틴 아메리카 음악에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는 점에서 본 앨범에 최적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3. Mérida

 현대의 실내악이라고 부를만한 곡이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유니즌이 중간중간에 등장할 때, 플룻이 쿠아트로의 반주 아래 낙차 큰 멜로디를 연주할 때, 구슬픈 코드 위로 에드워드 사이먼의 투명한 피아노 음색이 주제를 연주할 때, 그리고 중첩된 악기들 사이로 마크 터너의 테너 색소폰이 다시 주제를 연주할 때 모두가 황홀하다. 근래에 모든 장르를 통틀어 이렇게 아름다운 발라드를 들어본 적이 없다.

 주제 연주 후 등장하는 에드워드 사이먼의 피아노 루바토가 끝나면 마크 터너의 즉흥연주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 순간은 마크 터너가 가지고 있는 연주자로서의 덕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재즈 언어의 다양성, 정확한 피치, 음역대의 풍부함, 끓어오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절제미, 주제를 다시 연주할 때 발견할 수 있는 완급조절 등에서 노련함을 보여주는 그는 자칫 중심을 잃을 수도 있는 악기 편성과 편곡에서 매우 중요한 구심점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4. Maracaibo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느린 3/4박자로 시작하며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위에 관악기들의 정교한 하모니가 쌓이며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조립하다가, 퍼커셔니스트의 선공으로 12/8 박자 느낌의 4/4 리듬이 출발한다. 이 곡뿐만 아니라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멜로디의 구축이 매우 조직적이고 견실하다는 것.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인 음 대신 철저한 인과관계 아래 수립된 멜로디가 여러 개의 악기를 통해 분업으로 진행된다. Maracaibo 역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각기 다른 리듬으로 구분할 수 있는 두 개의 파트 모두에서 선명한 선율이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마크 터너의 즉흥연주 이후에는 트레이드 형식으로 퍼커셔니스트 Luis Quintero의 솜씨가 들려오는데,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기보다는 질감을 보여주려는 듯한 의도로 절제된 리듬을 사용한다.


5. El Diablo Suelto

 본 앨범에서 유일하게 에드워드 사이먼의 작품이 아닌 ‘El Diablo Suelto'는 베네수엘라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로 1888년에 출판되었다. 본래는 브라질의 'Choro'(브라질의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한 가요)처럼 빠른 템포와 애수가 짙은 코드 진행 위에 많은 음과 가사를 활용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먼은 자신의 편곡에서 느린 박자의 5/8박자와 6/8박자를 오가는 복잡한 왕복을 선택했고, 마크 터너의 즉흥연주 이후 곡의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마지막으로 재등장하는 쿠아트로의 현란한 연주를 통해 빠른 3/4박자에 올라탄다. 이어지는 플룻과 피아노의 즉흥연주까지 도합 하여 연주자들의 개인적 역량이 얼마나 원숙해져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 그리고 이 황홀한 음악의 끝에서 다시 첫 번째 트랙 'Barinas'를 재생하면, 끝과 처음이 스스로의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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