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질 소리가 귓가에서 경쾌하게 맴돌았다. 미용실 의자에 앉은 지연은 여행 자랑에 신이 났는지 "유럽 2주에 300만 원, 진짜 가성비 최고였어요!"라며 떠들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녀가 수화기를 들자 지연의 모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연아, 미안한데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났어, 고치려니까 30만 원 든다는데 어떡하지?" 지연의 입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30만 원이요? 지금 꼭 필요한가요?" 전화 너머로 엄마의 작은 한숨이 들렸지만, 지연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그럼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굳이 수리비로 그렇게 많이 쓸 필요 없잖아요."
전화를 끊자 수석 디자이너가 지연에게 조심스레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지연이는 금세 표정이 바뀌더니 "네, 펌이 아주 잘 나와서 만족스러운걸요?"하고 답했다. 그날 밤 지연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방에서 '중고 이동식 에어컨'을 검색한 다음 최저가 정렬로 맞추어 비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