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10일씩이나 간다고?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의아한 반응이었다. 나의 여행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10일이면 너무 긴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달콤한 휴식에 한정된 기한을 부여한다는 건 애석한 법이지 않은가? 특히 여행 일정에만 매달려 계획한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하는 여행은 정말 답답하다. 이래저래 고민하다 10일 정도면 충분히 여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고 많은 여행지 중에서 굳이 ‘대만’을 고른 것은 비단 우연한 것만은 아니었다. 십 년 전, 그곳을 갔을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실패라고도 볼 수 있는 그 현장을 다시 선택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도 부족함에 한몫을 했지만, 여름 방학에 굳이 대만을 가겠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 감각이 한참은 부족했다. 동고동락하며 재수 시절을 지나온 친구와 함께 갔던 대만.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서투름을 풀어내기 바빴고, 낯선 외지에서의 표면 만을 쓰다듬고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악수를 해도 무방할 만큼이나 찌는 여름을 능가할 더위 속에, ‘우기’라는 강력한 상황은 수많은 악감정을 갖게 했다. 대만은 나에게 이런 나라인 걸까. 숱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나는 대만에 대한 모든 호기심을 출국 비행기에 버리고 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기억들은 나만의 우물 속에서만 존재했다.
이후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누군가 선망할 직업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간사하기에 짝이 없어서 현실에 익숙해져만 갔고,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가르침에 보람도 느꼈다.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 뒤를 돌아보면 자그마한 손길들이 공책에 삐뚤빼뚤 받아 적는 모습이 귀여웠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허둥거렸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유를 갖추게 되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규칙적으로 복도를 걷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그러다 이 일상이 깨어진 건 순전히 ‘여행’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으며 교실과 이어진 내 생활 루틴을 잠시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인 루틴을 고의로 중단시키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나를 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여행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다양한 여행지를 보고 무턱대고 항공권 구매를 눌렀지만, 몇백만 원이라는 숫자를 보고 창 닫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신규 교사 월급으로는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스크롤을 한참 더 내렸다. 거기서 ‘대만’이라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추억과 동시에 온갖 상처들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곳 속에 꽁꽁 묻어두었으나 그간 치유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만이라는 타이틀 옆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항공료가 적혀 있었다. 머뭇거렸던 것도 잠시, 저렴한 가격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좋겠지, 정말 좋겠지. 이 가격이면 또다시 후회하더라도 크게 아깝지는 않을 거야. 결정적으로 타이거 에어에서 온 특가 항공료 안내 메일을 보고선, 고민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 대만 어때?”
마침 친한 친구에게도 슬쩍 말을 건넸다. 그도 나와 같은 교사였다. 친구는 어차피 집에만 있는 것보다 뭔가를 하러 가는 게 더 유익하지 않겠냐면서 쉽사리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의 악몽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더욱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 나갔다. 야시장에서 큐브 스테이크를 먹거나, 타이베이 101에서 반짝거리는 야경을 구경하거나, 이전에 맛보지도 못했던 디저트들을 먹거나. 갖가지 꿈을 꾸면서 계획을 펼쳐 갔다. 무엇보다 예전의 대만에서는 나 홀로 여행 계획을 다 구성하느라 꽤 애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친구와 함께 세우는 여행 계획은 앞날을 꿈꿀 수 있어 무척 기뻤다. 평화롭고 낭만적인 여행. 꿈꿔 왔던 게 하루씩 앞당겨 오는 기분이었다.
가슴속에서 별이 빛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입가가 간질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여행의 가닥을 끌어당기며, 캐리어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