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노력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재능이 아니다. 운이 다분히 있어야 비로소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노력하는 데만 재능이 있었다. 지하철에 내린 우리는 재빠르게 여행지원금 센터로 발길을 옮겼다. 만약 모두가 여행지원금에 당첨된다면 40만 원가량을 받을 수 있었다. 누구 하나만 당첨되더라도 행운은 행운이었다. 우리는 누가 되든지 간에 당첨금을 공정하게 나누어 쓰자고 약속했다. 미당첨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지원금을 받아 여행하는 상상에 푹 빠져 있었다. 이미 블로그들을 검색해 봤을 때, 당첨자들의 많은 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추첨 태블릿 앞에 당당히 섰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개인 QR 코드를 열어 스캔했다. 그렇게 3초가 지났을까. 스크린 위로 황금빛 코인들이 무수히 떨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여러 코인들을 더듬다가 하나를 꾹 눌렀다. 순간, 화면이 멈추었다.
‘꽝’
실망하는 마음이 울컥 솟아났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번에는 친구의 차례였다. 네 차례야 파이팅. 그래, 너라도 되어야지.
‘꽝’
우리는 마주 보고 멍하니 한참을 쳐다봤다.
“어떻게 우리 둘 다 꽝일 수 있는 거지?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운명이지 뭐…….”
허무함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구의 자동문이 서서히 열렸다.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씻어 내렸다. 한기가 몰려와 얼굴을 감쌌다. 여행 전까지 타이베이의 최저 온도를 미리 확인하고 왔음에도, 현지에서 실제로 맞이하는 체감온도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당연히 봄과 초여름 사이의 온도로 생각해 왔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초겨울의 온도나 다름없었다. 영상 18도 정도로 예상했던 것과 매우 달라, 얼른 캐리어를 열고 외투를 찾았다. 여기쯤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외투가 보이지 않았다. 애꿎은 항공권만 눈에 띄고, 외투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가 특가 항공권으로 구매한 까닭에 추가 수화물이 제공되지 않아서, 무거운 짐을 현관 앞에서 다 빼두고 온 것이었다. 아, 정말 큰 실수였다. 대만 날씨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애꿎은 다른 짐들만 째려봤다. 운과 함께 중요한 것을 한국에 두고 온 지금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역과 가까운 숙소였다. 2층 침대를 써야 하는 방이었지만, 긍정적인 후기가 많았다.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호텔’이니까, 안심했다. 게다가 2성급이었다. 깔끔함과 좋은 후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다만, 욕실은 공동 사용이었다. 왜 호텔에 욕실이 공동 사용인지, 그걸 의심해보진 못했다. 어쨌든 호텔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숙소 앞에서 더 할 말을 잃었다. 호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호텔이 없었다. 우리를 맞이한 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빌딩이었다. 잘못 왔나? 지도를 여러 차례 찾아봤지만, 위치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안은 괜찮겠지, 싶어서 문을 열었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벨을 여러 차례 눌렀지만 아무도 없었다. 쩔쩔 매고 있다가 문득 호텔에서 보낸 메일이 기억났다. 메일을 열고 한국어로 번역했다.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내용을 자세히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입구 열쇠가 근처에 숨겨져 있는 걸 알았다. 열쇠를 찾아서 문을 겨우 열자, 텅 빈 안내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는 긴 복도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문들이 보였다. 아, 속았구나. 아니, 내가 몰랐구나. 이곳은 호텔이 아니라 2성 게스트하우스라는 것을.
방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메일에서 쓰인 ‘세숫대야 옆’이라는 말을 따라서 예약한 방을 찾아다녔다. 방탈출카페도 아니고 이게 뭐람! 나는 풉, 하고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세숫대야를 찾았는데 그 옆으로 또다시 작은 복도에 여러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우리 객실이었다. 반쯤은 실망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실망은 전초에 불과한 것이었다.
방문을 열고, 우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 예약한 2인실 방이 아니었다. 객실이 너무 좁았다. 2층 침대가 방을 꽉 메우고 있는, 비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짐을 풀 여유를 찾지 못했다. 서로의 몸집이 크게 느껴진 나머지, 번갈아 가며 씻기로 결정했다. 나는 공용 욕실로 가 샤워기를 틀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따져 물었다. 스스로에게서 답이 나오진 않았다. 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누였을 때,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똑똑,
하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함을 뚫고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허술한 문틈 사이로 바깥의 모든 소리들이,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입하듯이 빨려 들어왔다.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에 들려고 몸을 뒤척여도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서 단숨에 꿈나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는지 잠들지 않은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얕은 꿈 속에서 길고 긴 밤 동안 여행의 시작점, 그러니까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불편함을 잘 견딜 수 있었다. 불편함 역시 여행의 한 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즐거웠다. 감수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기꺼이 감수했다. 숙소의 크기는 내 행복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커버린 나를 느꼈다. 이제는 큰 객실과 깔끔하게 정돈된 어메니티, 프라이빗한 공간, 정갈한 서비스에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취향에, 나조차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달라진 내 모습을 돌아보니, 권예슬 작가의 『취향의 기쁨』에 있는 “취향에 정답은 없으니까”라는 문장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다. 취향이란 한 번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바뀌고 쌓여가는 것이다. 여러 변화와 시도 속에서 내 취향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변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