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짠 대만 여행 계획이었지만, 꽤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환전'은 물론이며, 옷, 돼지코, 옷걸이 등 필요한 물건을 잘 점검했고 세부 일정을 구글 시트에다 정리했기에 어떤 어려움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심지어 모든 예약 바우처까지 시트에 정리할 정도였으니, 내가 짰지만 참 잘 짠 거 같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10년 만의 대만 여행은 우리를 어떻게 반겨줄까 생각하며 들뜨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대만에 입국하자, 여행지원금의 당첨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카운터로 달려갔다. 우리 둘 중 단 한 명만이라도 당첨되더라도 약 20만 원을, 그리고 두 명 다 당첨된다면 약 40만 원을 여행에서 쓸 수 있으니 기대가 꽤 큰 편이었다. 무엇보다 블로그 후기를 살펴봤을 때, 여행지원금이 당첨 확률이 꽤 높은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준비해 온 QR 코드를 기기에 스캔하기 시작했다. 마구 내려오는 동전들. 과연 어떤 동전이 행운의 동전일까 골똘히 고민하며 하나를 재빨리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런데, 태블릿 화면이 약 5초간 멈추는 게 아닌가!. 우리 모두 '뭐지?' 하며 가슴 졸이며, 결과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꽝'.
어떻게 두 명 전부 꽝일 수 있냐며, 실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우리는 공항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매서운 바람이 얼굴로 세차게 불어댔다. '18도라는 온도가 이 정도 추위였나?' 싶었지만, 그럴 불평할 틈도 없이 차디찬 바람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얼른 뒤로 맨 가방을 열어 손으로 외투를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짐을 가볍게 오자며 긴 옷은 전부 두고 왔던 과거의 내가 생각 냈다. '대만은 따뜻한 나라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5시간 전의 내가 정말 미웠다. 겨우 친구에게 옷을 빌려 입고, 숙소로 매섭게 뛰어갔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지금부터 시작되으니. 사실 우리는 대만에 밤늦게 도착할 예정이라 저렴하고, 역과 가까운 곳의 숙소를 예약했다. 우선, 사진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깔끔해 보였고, 제일 중요한 '리뷰'도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공동 사용 욕실'이라는 단어가 걸렸는데, 씻을 때 잠깐 불편하면 되니 감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2성급 호텔'이라고 하니, 꽤 안심했던 거 같다. 예상컨데, 우리는 '조금 좋은 게스트하우스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사건의 시작은 체크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늦은 밤 입실이라 체크인을 도와주는 분이 계시지 않았다. 따라서 호스트께서 보낸 영어로 된 문자에만 의존하여 열쇠를 찾고, 비밀번호를 눌러 입실하게 되었다. 우리는 겨우 숙소를 찾아 들어왔고, '세숫대야 옆' 방이라는 우리의 객실을 찾기 시작했다. 운 좋게 객실을 발견했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이 방이, 우리가 예약한 방이 맞는지 한참을 확인했다.
우리가 예약했던 2인실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방이었기 때문이었다. 표현하자면, 아주 작은 창고에 2층 침대로 억지로 욱여넣은 느낌이었다. 또 그건 둘째치고 짐을 풀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고, 단 한 명의 짐을 풀기에도 부족한 공간이었다. 방문이라고는 천장이 뚫려있는 나무 미닫이문이 전부였으며, 바로 앞이 세면대여서 소음이 아주 상당했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봤던 방. 충격을 받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우리는 할 말을 잃은 채 침대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밤 11시. 낯선 나라의 주인 없는 숙소에서 대체 뭘 어쩌겠는가. 한 명이 짐을 풀고 정리하는 동안 한 명은 침대에 올라가 있고, 또 한 명이 짐을 다시 싸고 다른 사람이 풀고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공용 욕실에서 얼른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스무 살까지만 해도 국내 내일로 여행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지내왔던 거 같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먹고, 자고, 씻고 하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숙소 크기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 마저도 재미였고 여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라는게 생기는 거 같기도 하다. 그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닌 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걸 보니 어딘가 씁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