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곧 나

오늘 하루 나의 말과 걸음에 책임을 질 수 있길

by 소화

수업이 끝난 후,

인권교육 자료 주제를 정하기 위해 모였다.


“일단 하나씩 던져보자. 그중 모아보고 붙여보고 하자. “


함께, 서로, 나누는, 살리는, 세상, 앎, 삶, 더불어, 꽃,


우리에게 나온 단어들은 이러하다.

가만 보니 특징적으로 즐겨 쓰는 단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 사람이 지향하는 것이 담겨 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함께’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은미는

말 그대로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과도 늘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하고,

아이들끼리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자 애쓴다.


심지어 직원 여행 가서 2인 3각을 하고, 밤늦게까지 같이 놀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자고 싶다고 해서

”그건, 가족끼리 가서 해. “라는 핀잔을 나에게 듣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은미는 함께 할 가족도 많다. 자녀도 나의 세 배, 세명을 낳았다.


‘서로’, ’ 꽃 피우는’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혜선이도

그 안에 혜선이가 담겨있다.

텃밭 가꾸고 곡식 거두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혜선이.

그 말에도 생명이 담겨있고, 그것을 또 우리와 나누려고 한다. 참 닮았다.

척박하던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농사지어 그 아이들이 점점 꽃 피우려 하니 혜선이 또한 자신의 말을 삶으로 참 잘 살아내고 있다.


‘세상’을 두 번이나 강조하며 외치던 은정 언니.

무척 더웠고 슬펐던 지난여름.

(벌써 여름을 지난으로 표현해야 할 때이다.)

교실 안에서 얌전히 지내던 우리들을 세상으로 꺼내어주고 도로 위에 함께해 준 사람이다.

농담 삼아 내가

“언니는 교권 운동계의 유관순 같은 사람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외쳤고 발걸음을 하던

언니는 나와한 살 차이가 나지만 나에게는 큰 어른인 셈이다.


나는 ’ 삶‘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 앎‘ 그리고 ’ 삶‘

사실 나는 이 두 글자밖에 쓸 여력이 안된다.

나의 단어 스펙트럼의 한계라고 할까?

얕은 지식을 채우고 깊이를 더하고자 ‘앎’을 이야기하고

큰 세상, 색다른 경험을 원하고 늘 채우기를 동경하지만 어쩌면 늘 제일 작은 공간에서 늘 마주하던 것들만 마주하는 나이기에 더 ’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말로 나를 보여주고자 포장하지 않아도 지나치는 작은 순간, 뜻밖의 시간에서

내 안에 많은 것들이 나를 보여준다.


어제 우리 넷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그러했다.


우리가 이야기한 것은

인권교육의 주제가 아닌

짧은 단어들로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안고 드러내며 살아가고자 기도했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작은 이들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순간순간 뒤틀리는 내 마음에 성난 표정을 짓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 또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고 어루만져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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