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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ug 23. 2022

나는 지독한 길치다.

길치는 공간지각력이 낮아 길 또는 방향을 찾는 능력이 떨어지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나무 위키, 2022).


어릴 땐 웬만한 곳은 어른과 함께였고, 학교 다닐 땐 주로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내가 길치라는 걸 깨달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길을 헤맬 때가 많아지자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가가 밀집한 지하도나 출입구 많은 전철역은 나에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가 살 것 같은 지하세계였다. 그 미로에 한번 들어가면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길은 소원하기만 했다. 잘못 나온 출구로 서너 번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내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방향 감각도 희박한 나는 한번 잘못 갔던 길을 다시 가기 일쑤라 헤매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약속이 있을 땐 아예 헤맬 시간을 미리 계산에 넣어야 했다.


제일 난감한 건 미팅이나 소개팅 때였는데, 어둑한 카페에서 화장실에 갔다 다시 내 자리를 찾아오기가 너무 힘들었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 되는데, 왼쪽 오른쪽이 바뀌는 돌아오는 길은 내겐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보였다. 친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땐 약속 시간 전에 미리 화장실을 가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는 이성 앞에서 지리적 공간 개념의 부족으로 인해 빚어졌던 나의 굴욕 에피소드들은 굳이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전철을 거꾸로 타고 한참을 가도 모르거나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깜빡 지나쳐 내리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일이 계속되자, 나는 슬그머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 넘어 미아가 되기 싫었던 내가 나름 연구한 길 찾기 방법은 '표적 만들기'였다. '빨간 건물 지나 오른쪽 첫 번째 골목'이나 '현수막 걸린 곳 왼쪽으로 하얀 건물' 이런 식이었는데, 이것도 확실한 방법은 못 되었다. 재개발이나 도로 공사가 많던 시절 하루아침에 사라진 현수막이나 변해버린 건물 근처에서 나의 방황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 얼마 안 되었을 때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내가 살던 지역은 도로에서 10분만 달려도 산길이 나오는 곳이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널리 쓰이지 않을 때라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야 했다. 지도 위에서도 역시 길치인 내게 지도는 종이 위에 그려진 정교한 그림에 불과했다. 운전에 자신이 있던 나는 길은 어디나 통한다는 배짱으로 호기롭게 차를 몰고 나갔다가 결국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출발한 적도 있다. 집에서 가는 길은 알아도 제삼의 장소에서 가는 길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산길이었다. 똑같은 길이어도 낮에 가는 길과 밤에 가는 길은 내겐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하던 나는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차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곰이 나올 것 같은 산길에서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지만 주변에 나무밖에 없어 내가 어디 있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남편과 통화를 하며 어찌어찌 그곳을 빠져나와 보니 내가 있던 곳은 한 대학 캠퍼스 야산이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기가 막혔다.


심한 길치인 내가 그동안 헤맨 길은 셀 수 없이 많다. 숱한 길을 헤매고 다녔지만 그 끝은 항상 목적지였다. 한 시간을 헤매든 두 시간을 헤매든 어쨌든 가야 할 곳에 가 있긴 했다.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해 표적을 만들었듯, 삶에서도 나는 이정표를 찾으려 애써왔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글을 쓴다.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영영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이다. 지금 여기 와있을 수 있어서 좋다.


태어나며 삶의 여정을 시작한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어 재미없는 그 목적지보다는,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는 건지도 모른다. 순간순간을 즐길 이유가 여기 있다.

잘못 든 길, 돌아가는 길, 누군가와 동행하는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때론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롯이 나만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그 길을 오늘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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