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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ug 26. 2022

눈물이 흐를 때

서울에서 지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지하철 타기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어딘가를 향해 갈 일이 드물다.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남편이나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전부다.

그래서 서울에 오면 나는 지하철을 즐겨 탄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다음 환승역까지, 그리고 지하철역을 나와 목적지까지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지하철 안에서는 고개를 숙여 글을 읽어도 멀미가 나지 않아서 좋다.

도시에서 기차를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전동차가 선로를 달리며 내는 규칙적인 소음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다. 그들의 옷과 신발로 요즘의 트렌드를 짐작해 보기도 하고, 들릴 듯 말 듯한 그들의 대화로 상상력을 가동해 보기도 한다.


문이 열리고 여섯 살쯤 된 여자 아이가 폴짝 지하철에 오른다. 긴치마를 입은 여자와 나란히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건너편에 자리 잡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에게 "엄마도 일루 와" 한다. 알고 보니 긴치마의 여자는 이모, 짧은 치마의 여자는 엄마였다. 아이 옆에 앉아있던 청년이 엄마와 자리를 바꿔주자 아이는 "고맙습니다"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끝말잇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이미 1차전은 다른 곳에서 치르고 온 듯 세 사람은 게임에 익숙했다. 양 옆에 엄마와 이모를 꿰찬 아이는 밥을 안 먹어도 배 부를 것 같은 만족감에 터질 듯한 목소리로 게임을 주도해 나갔다.

"근데 너 자꾸 캐릭터 이름 말할래? 이모는 캐릭터 잘 모르니까 네가 맞았나 틀렸나 알 수가 없잖아." 이모는 사뭇 진지하다. 뭐라 대꾸하는 아이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게임에 진심이었다. 마치 돌고 도는 그들 간의 사랑처럼 그들이 내릴 때까지 끝말잇기 놀이는 이어졌다.


나도 그랬었다.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 엄마와 이모를 내 양 옆에 두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나의 큰 딸도 그랬다. 한창 말을 배우기 시작하던 서너 살 무렵 가족이 모이기만 하면 끝말잇기 놀이를 하자고 조르곤 했다.

한 번은 테이블 가운데 부분이 회전하는 중국 음식점에서 큰 딸이 외증조할머니까지 온 식구를 아우르며 식사하는 내내 끝말잇기를 진행했었다. 귀찮아할 만도 한데 그만하자는 말 한마디 없이, 밥 먹느라 끝말잇기 순서 지키느라 쩔쩔매던 가족들의 모습. 빙글빙글 테이블을 따라 돌던 그때의 온기가 살아났다.

엄마 손과 이모 손을 양쪽에 쥐고 총총 지하철을 내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눈가가 젖어옴을 느꼈다.

그 작은 아이에게서 나를 보고 또 나의 아이를 보았던 순간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As Tears Go By'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1965년 발매된 앨범 <December's Children (And Everything's)>에 들어있는 노래다.

어느 저녁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지만 들리는 건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뿐.

내가 예전에 하던 놀이들을 아이들은 새로운 것인 양 여기며 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다.


집에 돌아와 이 노래를 찾아 들으며 창문 밖 석양을 바라보았다.

하루를 보낸 안도감에, 곧 찾아올 밤의 평안함에, 그리고 새로이 만날 내일에의 기대감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YbxQFr6TT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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