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목표가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나요?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목표가 정해지지 않아서 막막하신가요? 그렇다면 목표 없이 사는 방식을 배워보시는 건 어떤가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대한민국은 목표의존증 환자로 득실거립니다. 이들은 목표를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느냐에 행복이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정작 목표를 이루면 우울증에 걸려있죠.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또 다른 목표를 찾기 바쁩니다. 이게 목표중독이 아니면 뭘까요.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우리는 마치 목표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목표 없이 사는 방식도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그걸 몸으로 알고 있죠. 일을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탑다운 방식, 바텀업 방식. 탑다운방식이 우리가 아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상태와 목표를 세워두고 목표까지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루단위로 쪼갭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탑다운 방식입니다.
바텀업방식은 반대입니다. 지금은 목표가 없지만, 당장 끌리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결과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과정을 목적으로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정해진 길이 없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내면의 느낌이라는 내비게이션을 믿고 달려갑니다. 내면의 안내자를 믿고 지금 끌리는 것을 열심히 하면 훗날 내가 찍어온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 안에는 어떤 '본성'이 있습니다. 탑다운 방식 혹은 보텀업 방식이 나에게 맞는다는 그 느낌. 그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까지 말하면, ‘난 목표가 있어야 해. 난 지금까지 탑다운 방식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탑다운 방식으로 해야 할 거 같아’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목표의존증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목표의존증 환자였기 때문에 저는 바텀업방식을 배운 뒤에도 이 방식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목표 찾기 게임’이 아닙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목표가 생기면 탑다운 방식을 통해 목표로 나아가는 것도 나쁜지 않습니다. 목표가 없다면 일단 직관과 내면의 끌림을 믿고 달려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목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탑다운방식이 좋냐, 바텀업방식이 좋냐 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들은 목표를 세우고 달려 나가지도 않고, 지금 당장 내면의 이끌림을 믿고 달려 나가지도 않습니다. 삶이 두려워 도망치기 바쁘거나 산송장이 되어 기계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항상 목표의 내용에 집중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목표의 원동력입니다. 먼저 원동력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모든 행동의 원동력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사랑과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에 따라 행동하고 목표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원동력으로 할 때 우리는 나다워지고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할 때 우리는 겉돌게 됩니다.
저는 왜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자마자 공허함에 빠졌을까요? 목표의 원동력이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제 꿈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공무원을 좋아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부모님에게 상처 주지 않고 성실하게 자라는 바른 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아니면 실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는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대학교를 가야 한다는데, 거기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자기 계발서는 모두 '대학교 입학 = 성공'이라는 느낌을 줬습니다. 저는 이런 느낌에 깜빡 속아버린 겁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한 일들입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한 목표는 수단적인 목표가 됩니다. 즉, 이 목표는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목표입니다. 저는 행복하기 위해 대학교에 갔고, 남들을 위해 대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니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자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항상 극단적으로 두려움을 원동력으로만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저는 종종 공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감정이 두려움이었고, 대학교에 가고자 하는 목표 자체가 두려움에 의해 선택한 목표였기 때문에 끝은 공허함이었지만, 저는 공부를 즐겼기 때문에 입시를 버틸 수 있었고, 가끔은 논술 합격의 기적과 같은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목표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목표의 원동력입니다.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들이 되려고 하는 목표라도 두려움으로 할 수도, 사랑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원동력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감정은 곧 생각과 행동에, 삶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이번 목표가 잘못되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보다도 그 목표를 사랑이라는 원동력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에 옳거나 그른 목표는 없으며, 단지 영감에서 탄생한 목표와 절박감에서 비롯된 목표가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내적으로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에 달려있습니다." - 조세프 응우옌
흥미로운 사실은, 바텀업방식으로 살면 내 목표의 원동력이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는 겁니다. 이미 내 내면의 이끌림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가 사랑하는 것, 지금 이걸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걸 하기 때문에 언제나 과정을 즐기고 나다워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목표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목표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것이요, 지금 눈앞의 인생을 즐기기로 목표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물 찾기처럼 찾고 있는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말이죠, 그걸 찾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나랑 ‘분리’되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이 찾고 있는 그 무엇과 하나입니다. 분리되어 있다는 믿음만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 방법은 당연히, 지금 당장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내일 당장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끌리는 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야간 주행을 생각해 보라. 헤드라이트는 고작 50-100미터 앞밖에 비추지 못하지만 당신은 그 차를 몰고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라도 갈 수 있다. 전방 100미터만 보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습도 이와 같다. 전방 100미터가 펼쳐지고 나면 다음 전방 100미터가 펼쳐지고, 다시 다음으로 100미터가 펼쳐지고, 그렇게 나아간다고 믿으면, 삶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 - 잭 캔필드
물론 우리는 지금 뉴욕으로 갈지 어디로 갈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목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린 그저 지금 당장 끌리는 곳으로 달려가고 그렇게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달리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뿐입니다. 우리는 달리는 그 자체에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성취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의 정답을 갖고 퍼즐 조각을 맞추며 살아왔다. 정답이 하나뿐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빨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 완성될지 모른 채 레고 블록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왔다. - <프로세스 이코노미> 中
“목표를 향해 최단 거리로 움직여서 효율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내면에서 샘솟는 무언가에 이끌려 인생을 즐기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미’야말로 최첨단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다.” - 가라카와 야스히로
사회의 이단아가 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최첨단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래도 이젠 뭘 해야 할지 정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하는 말을 무시하세요. 여러분에겐 더 놀랍고 멋진 방식이 있습니다. 뭘 해야 할지 정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나은, 더 황홀한 나만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바로 그런 방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실 수 있으니, 실천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말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하다면, 지금 당장 뭐라도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내가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했을 때 해보고 싶은 일을, 하지만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을 법한 일로 시작해 보세요. 왜 그래야 할까요? 몸짱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한 초보자는 시작부터 100kg의 덤벨을 들지 않습니다. 3kg짜리 덤벨을 들죠. 우리도 그렇게 시작해 보는 겁니다.
지금 당장 내면에서 샘솟아 이끌리는 일,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 내가 원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 일을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뭐 그런 생각을 집어치우고, 그냥 오늘 하루 재미나게 해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보겠다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남들을 돕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지인부터 도와주기로 결심하세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 지혜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 지인들이나 인터넷으로 가서 글을 써보면 됩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달려도 될까요? 제가 가는 길이 어떻게 완성될지 정해두고 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전히 의심이 가신다면 저는 이 구절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달리기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나이키가 떠오릅니다. 나이키를 만든 창업자 필 나이트는 말했습니다.
1962년 그날 새벽에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 <슈독> 中
여기서 중요한 문장은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입니다. 저는 이런 선언을 했다는 것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왜 나는 어디인지 깊이 생각하느라 달리지도 못했지? 난 왜 꼭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이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아야 할 마음가짐인 거 같아. 어디인지 깊이 생각하느라 멈춰있지 말고 지금 끌리는 곳으로 달려 나가면 되잖아.’
세상의 동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목표가 명확하고 비전이 너무나 깔끔해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그저 내면의 이끌림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시작했을 뿐입니다. 필 나이트는 그저 운동화를 사랑하고 달리기를 사랑해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인터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정말 명확한 목표를 그리고 시작했을까?
잡스는 그저 ‘창업 멋지잖아.'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이끌렸고, 무언가를 만들어서 파는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20년 뒤의 명확한 목표? 이 길의 끝? 스티브 잡스는 5년 뒤의 미래는 상상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단지 원동력이 있었을 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말입니다.
목표를 명확히 하면 당연히 나쁠 거야 없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틀리다’는 생각은 정말로 틀렸습니다. 우리는 전방 100미터만 보이면 충분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두 그런 전방 100m를 볼 수 있는 헤드라이트가 바로 여러분 내면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 앞에 밝게 빛나고 있는 길을 발견하세요. 보이지 않는다고요? 헤드라이트에 먼지가 너무 많이 끼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대로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