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백칠십
설국
곽효환
사흘을 내리는 눈,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 숲 하얗게 물들다
늙은 산사는 푸르게 혹은 붉게 물들었던 기억을 놓고
산문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지우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걸린 겨울바람
윙윙- 돌아 시리게 명치끝을 저미어오다
먹먹하다
멀리 인적 드문 간이역 숨죽여 맞는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눈 덮인 어둠
푸르고 흰 바람의 그림자
숲의 나라로 천천히 들어간다
이 밤 다시 눈과 나무들 뒤엉켜 몸서리쳐오리니
한 사흘 더 눈 내리면
그리움마저 몸살 나겠다
밤의 바닥까지 하얘지겠다1)
1)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도입부 일부 변용
[설국 도입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사흘을 눈 내리면, 제가 슬퍼하는 하얀 공간이 나옵니다.
경계가 사라지는 그 하이얀 하이얀 아득함을 저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설애(雪哀)입니다.
눈과 어둠이 내리면 그리움마저 몸살 나겠다는 이 시는 제 심정을 잘 그려냅니다. 눈이 세상을 덮으면 저는 꼼짝을 못 합니다. 이거 혹시 저주같은 걸까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