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단계 : 섹스의 목적은 섹스의 죽음이다

by 유주얼

섹스는 몇 살까지 하면 좋을까?

늙어서까지도 오랫동안 섹스를 즐기는 건 부러워할 만한 일일까?

요즘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니 노년이라도 젊게 살아야 한다고 부추기면서 실제로 남다른 노력으로 자기 나이답지 않게, 훨씬 더 젊게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욕먹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흐름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나이답게 산다는 건 가장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어째서 굳이 그 순리를 거스르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년이 되면 삶을 다른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생겨야 마땅하다. 늙었는데 늙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젊음에 연연하며 미련을 두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요즘 티비에 출연하는 의사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을 볼 때 나는 경악한다. 노화가 왜 질병이지? 말도 안 된다.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해야만 사람들이 노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래야 각종 영양제며 화장품이며 비싼 기기와 시술 같은 각종 상품들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2002년에 개봉했고 칸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한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있다. 70대 노년에 만난 여자와 남자의 실제 사랑과 성애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화되었고 실제 인물이 영화 속 주인공을 그대로 맡아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심의에서 남자 배우와 성기 노출 장면과 구강 성교 장면을 삭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70대 노년기의 여자와 남자가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불태우는 육체적 사랑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보통 노년기에 이르면 성욕도 감퇴하고 성애에 대한 관심도 없어진다는 통념을 갖고 있다. 물론 남자는 아무리 늙어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여자를 원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할 때 그러한 남자들의 행태를 온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 추잡함을 정말 못 말리겠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통념은 괜히 생겨나지는 않는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근거가 있을 때도 있다.

다 큰 성인 여자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유아어(幼兒語)를 사용한다면 누가 봐도 꼴불견이다. 동심을 간직하겠다는데, 내가 좋다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자기 나이에 맞는 적절한 성숙도를 가진 사람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통념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 속에 섹스에 대해 불타는 갈망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생애가 자연의 순리대로 생멸의 과정을 따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라나고 피어나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왕성해지면서 결실을 맺을 때가 있고, 나누어주고 비워가면서 소멸을 준비해야 할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순리대로 따르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자연과는 점점 반대로 치닫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거꾸로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협박한다. 이 미친 자본주의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이게 되면 우리는 태어나서 한 생을 사는 동안 인간의 권리로서 누리고 즐겨야 할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기쁨과 쾌락을 계속해서 저당 잡힌다.


천진난만하게 마음껏 장난치며 뛰놀아야 할 어린아이 때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경쟁은 시작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초등학교에 대비하고, 초등학생은 중학교를 대비한다. 중학생은 고등학교를 미리 준비하고 고등학생은 대학입시에 매달린다. 대학생은 취업을 준비하고, 겨우 직업을 구한 청년들은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행히 먹고 살 만한 중년이 되었을 땐 철저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노년이 된다.

그제야 비로소 인생을 즐기라는 허락이 떨어진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가장 신나게 놀 수 있는 나이에 놀지 못하고, 무모할 정도로 용기가 뻗치는 나이인데도 어떤 모험에도 뛰어들지 못한다. 실컷 방황해도 지치지 않을 나이지만 방황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모든 감각이 가장 생동할 때에 가장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쾌락을 훗날로 유보한다.


이렇듯 왜곡된 사이클 속에서 섹스 또한 가장 왕성할 때 왕성해지지 못하고 가장 무르익을 때 무르익지 못한다. 그러니 섹스는 다른 차원으로 성장하고 변화될 기회조차 없어지고 마땅히 사그라들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사그라들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이팔청춘, 즉 16세를 전후로 가장 왕성한 섹스 에너지가 생겨난다. 바로 이 연령대에 섹스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또 그렇게 즐거운 섹스를 통해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져야만 가장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자연과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기에, 최대한 현실에 맞춘다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만 19세가 넘어갔을 때는 마음껏 섹스를 즐겨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며 여러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뜨겁게 사랑하고 때로는 지독한 방황도 하며 청춘의 에너지를 꽃 피워야 한다.

가장 싱싱한 육체를 지니고 있을 때 가장 지극한 쾌락을 느껴보아야 한다. 이게 자연의 순리다.

남들이 맛있다는 거 나도 먹어보고 남들이 입는 옷 나도 입어보고 남들이 가봤다는 곳 나도 가보는 것은 진정한 '나의 쾌락'이 아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는 일은 나의 쾌락이 아니다.

참된 나의 쾌락을 찾고 집중해야 한다. 진정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탐구해야 한다.

육체를 가진 사람인 이상 거기에 섹스는 당연히 포함된다.

이것이야말로 청년의 때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20대를 넘겨 30대, 40대가 되면 섹스가 무르익어 성숙해질 때이다. 쾌락의 차원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육체적 쾌락과 함께 정신적 쾌락을 누리게 되고 이 기쁨은 사랑의 에너지로 확산된다. 개인간의 사랑에서 시작되지만 모든 생명체와 자연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영적인 단계를 향해 차츰 변화되고 성장해 나간다.

만일 이런 단계를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거쳐왔다면 50대 이후로는 생식기 차원의 섹스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 육체적 쾌락보다는 영적인 성장에서 더 큰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섹스는 아주 평온하게 사라진다.


섹스는 저절로 생겨났듯이 자기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노년이 되었는데도 섹스가 남아있다면 20대에서 40대까지 섹스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영화 <죽어도 좋아>의 70대 여자와 남자 역시 그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섹스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다 피어나지 못한 섹스가 응어리진 채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 70이 넘어서라도 섹스를 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 두 분처럼 다행스러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숟가락 들 힘밖에 없는데도 여전히 여자를 원하는 노년의 남자는 섹스를 누려야 할 만큼 다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횟수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성관계를 많이 했어도 섹스를 섹스답게 하지 못했다면 죽는 날 까지 섹스를 초월하지 못한다. 성기의 마찰과 정액의 배설과 말초적 쾌감에만 집착해서 섹스의 진정한 기쁨을 모르고 섹스의 본성이 가고자 하는 방향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섹스는 통과해야만 한다. 깊은 강을 건너려면 몸을 물에 풍덩 담가야만 한다.

몇 살이든 상관없이 나의 존재 전체로 통과해내지 않으면 섹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신체적 조건은 변하겠지만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 섹스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왜곡된 형태로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식탐, 원인 모를 짜증, 권태, 우울감, 알코올 중독 등 그 무엇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노년이 되기 전에 섹스는 끝이 나야 한다. 순리대로 살았다면 섹스가 끝나더라도 하나도 아쉽지 않게 된다.

더 크고 심오한 영적 기쁨과 만족이 있다.

모든 미련과 집착에서 해방될 때 차오르는 희열이 있다.

젊은 때에는 누릴 수 없는 노년만의 고요한 평안과 지복이 존재한다.


섹스는 죽기 위해 생겨난다.

섹스가 죽어야만 에너지는 진화한다.

섹스의 목적은 섹스의 죽음이다.


섹스가 죽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어떤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 정말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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