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에 도착한 학생들은 입구를 나서자마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바로 제주 공항의 상징과도 같은 야자수. '야자'라는 이름 말고는 다 좋다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빵 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구상나무, 구실잣밤나무, 먼나무, 담팥수, 후박나무, 야자수. 본토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들을 제주에선 꽤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여행자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가로수는 바로 1500그루 남짓한 야자수가 아닐까 싶네요. 야자수는 공항, 캠핑장, 해수욕장을 물론이고 사찰 앞에서도 그 위용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습니다. 도민들은 버스 정류장 옆에서 야자수를 보고, 공원에서 러닝을 하다가 야자수를 만납니다. 야자수는 저와 처지가 비슷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하디 흔한 선배 이주민이었습니다.
한라산은 마그마가 아직 식지 않은 활화산이라고 합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녹여낼 준비가 되어 있는 땅처럼 느껴집니다. 몽골에서 온 목호는 목장을 운영했고, 몰락한 조선의 정치인은 이곳으로 유배를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태평양 전쟁을 위한 기지로 오용되었습니다. 모든 방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개성 있는 장소로 남았습니다. 제주도는 교류와 고립이 함께 일어나는 섬입니다. 여전히 많은 목장이 운영 중에 있으며, 유배자의 그림은 국보로 남았고, 전쟁기지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한라산 정상부에 다가설수록 고사한 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도 해안가에는 죽은 해조류가 악취와 함께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제주시에서 먼지로 인해 한라산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라산 지킴이와 제주의 해녀, 시민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주가 변하고 있다고. 새로운 문화가 쉼 없이 유입되던 탐라는 환경과 기후변화에 휘둘리는 섬이 되었습니다. 범지구적 변화아래 모든 인간들이 동일한 재난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정체성은 위기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산처럼 쌓인 해조류와 파리를 보면서 코를 막았습니다. 언젠가는 이곳을 천혜를 '누렸던' 섬이라고, 지구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주도가 절대 보전 지역을 늘렸다는 소식과 곶자왈 매입이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옵니다. 재산권 침해와 환경 보전이라는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허파 곶자왈은 이미 30% 정도가 개발되어 사라졌습니다. 땅값을 올리기 위해 무단으로 숲을 벌목한 노인이 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이 다툼들을 제주도가 어떻게 소화해 낼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자수와 돌하르방, 사찰이 함께 어우러지는 약천사를 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하모니가 무엇인지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