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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매우 반짝이는 코

by RNJ Apr 06. 2023
돌하르방, 산굼부리돌하르방, 산굼부리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돌하르방을 지나치는 관광객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코를 한 번씩 쓱쓱 문지릅니다.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네요(남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르방 코를 만지는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밤에 길을 찾는 루돌프 코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빛나는 제주 하르방의 닳고 닳은 뭉툭한 코. 제주도를 대표하는 마스코트인 돌하르방은 특유의 친숙하고 귀여운 인상으로 널리,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돌미륵, 우석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까만 현무암 조각상은 어린아이들이 즐겨 부르던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돌하르방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지만, 대체로 중국이나 몽골을 통해서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네요. 제주도를 자주 다녀가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돌하르방은 지역마다 조금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180cm에 이르는 거대한 하르방부터 상대적으로 밋밋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하르방까지 종류와 모양이 아주 다양하죠. 육지에 있는 백제와 신라, 고려의 불상이 조금씩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관광객이라면 돌하르방을 사이에 두고 사진 하나는 찍어줘야 합니다. 지도사는 돌하르방 옆에 학생들을 차곡차곡 레고 블록처럼 쌓습니다. 돌하르방 사진보다 제주스러운 사진이 있을까요? 이 오래된 할아버지 석상은 촌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아주 잘 만들어진 생명력 강한 제주의 대표 마스코트죠. 주스, 카페, 식당, 박물관 어디든 돌하르방을 몇 개 가져다 놓기만 하면 바로 '제주'스러움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이유에서 제주 어디를 가든 비슷하게 생겨먹은 '신상' 돌하르방을 만나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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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카카오 본사 앞에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하르방을 만날 수 있고, 함덕 해수욕장 하르방은 선글라스를 쓰고 야자수 아래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난타 호텔 앞의 하르방은 양손에 무기를 든 채 다소 살벌한(?) 모습을 하고 있죠. 절물 휴양림 입구에 있는 나무 조각상은 얼굴은 하르방, 몸은 탈춤을 추는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제주도의 아기들은 하르방 인형을 뒤집어쓰고 백일 사진을 찍기도 하죠. 오래 살아남은 문화가 가지는 힘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그리고 이를 재치 있게 활용하는 인간의 창의력 또한 경이롭습니다.


 개성 있는 생김새부터 하르방이라는 독특한 제주어 이름, 그리고 시대에 맞춰서 변화하며 조화를 이루는 경이로운 생명력. 돌하르방은 우리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현무암은 석공의 노고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시류를 만드는 데 성공했죠. 무언갈 영원히, 오래 남기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는 새 시대를 맞아 트렌디한 상품이자 제주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배제한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2023년. 인간의 힘과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예술의 가치와 잠재력을 품은 존재가 제주 도처에 놓여있습니다.


 하르방은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언급한 meme에 해당하는 생존에 성공한 문화이자 기록물입니다. 오래 살아남으며,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게다가 번식(?)까지 성공했죠. 하르방의 코를 만지며, 다음 세대의 아들, 딸, 그리고 인간이 만들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은 하르방의 반짝이는 코를 보며 우리를 무엇이라 기억할까요?


나무하르방나무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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