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떠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논한다. 연인, 부모, 국가, 그리고 인생으로부터. 오래된 벽을 부수고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인간은 국경과 언어와 피부색 따위를 논하지 않는다. 우리네 삶에서 고를 수 있는 옵션이란 떠나거나 머물거나, 이것이 전부임을 갈지자를 그리는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깨닫기 때문에.
제주에서 이주민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육지 사람을 뜻한다. 이주민을 뜨내기라 부르는 원주민은 스스로를 토박이라 부르는데, 그들은 뜨내기에게 쉬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주 이주민의 평균 거주기간은 2년을 간신히 넘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떠나온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 앞에서 다시 이삿짐을 꾸린다. 나 또한 제주에서 5년을 넘게 살았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이곳을 떠나고자 하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주는 아이들을 표정을 밝게, 그리고 피부는 까맣게 만든다. 단골 가게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아이를 보며 "병약해 보이는 서울 아이들이랑은 너무 달라. 표정이랑 때깔이."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바다 수영을 하고, 바다를 가지 않는 날엔 노루가 뛰노는 숲에 가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의 구릿빛 피부를 보고 있자면 아스팔트를 녹일 듯이 작열하는 태양빛이 마냥 밉지만은 않다. 웃음이 예쁜 아이는 제주의 말과 달팽이를 좋아한다. 이젠 남아야 할 이유가 더욱 커졌다.
쾌활한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화가 이중섭이 그린 제주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가 언제부터 아이들을 그렸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첫아들이 죽고 난 직후에 <하얀 별을 안고 하늘을 날으는 어린이>를 전람회에 출품했었다.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디프테리아에게 빼앗긴 아이의 관에 친구들을 그린 종이를 한 장 넣었다고 한다. 큼지막한 관 안에 홀로 들어갈 작은 아이가 오래오래 쓸쓸할까 봐.
일주일에 두어 번은 찾아가던 이호동 해안가는 일 년 내내 풍경의 변화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데 인적이 드문 탓에 적막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노을이 옅어지고 구름이 밝아지는 늦은 저녁이 되면 눈보다 귀가 예민해진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낑- 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쇠말뚝에 목줄이 매인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주변엔 인가도 없었고 정차 중인 차량도 없었다. 해가 수평선을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주인, 아니 인간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제주가 유배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존의 삶과 분리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아온 나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이혼과 폭력, 오해와 멸시로부터 도망친 육지사람을 만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흉터를 감춘 이들은 자발적인 유배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했고, 종종 회복을 넘어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리가 굵어진 섬 아이들은 육지로 유학을 떠나길 희망하고, 육지의 부잣집 부모는 영어도시가 있는 대정, 추사의 유배지로 귀촌을 택한다. 로망을 품고 상륙한 청년들은 폐쇄적인 문화와 박봉 앞에서 현실 감각을 되찾는다.
"아무래도 그 대해(大海)는 사람 사람마다 건너오라고 권하여서 올 수 있는 길이 아닌데, 행여 놈이 같은 아이들이 아무 철도 모르고 망상을 낼 필요가 없으니 미리 그리 알아차리게 하시오."
서자인 상우가 아비를 따라 험하디 험한 제주뱃길에 오를까 근심하여, 추사는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아들을 방문을 말리고자 하였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보며 근심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자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일에 긍지를 느낄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추사는 아버지 김노경이 유배당한 고금도에 동생들과 돌아가며 머물렀고, 제주도 유배 시절엔 서자인 김상우가 김정희의 곁을 지켰다. 그는 아들에게 난을 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애월 바닷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때, 아비의 운명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가는 아이를 마냥 이쁘게만 바라볼 수 없다는 현실을 지각했다.
점쟁이는 아이가 큰 배가 될 것이라 말했다. 제주 바다에 난파당한 부모와는 달리 아이는 큰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범선이 될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빠는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매일 밤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내일을 살아갈 원동력으로 삼는다. 아비와 함께한 모든 추억이, 무거운 닻이 아니라 가벼우나 질긴 돛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