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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육아시 2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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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Mar 07. 2024

육지 삼춘


 제주도에는 특별한 호칭이 있다. 바로 '삼춘'. 처음 보는 아저씨도 삼춘이고 오래도록 알고 지낸 아주머니도 삼춘이다. 경상도 식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모'는 여성 종업원을 대상으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제주의 '삼춘'은 친척, 웃어른, 식당, 가게, 올레길을 막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호칭이다. 제주에서 태어났고, 한동안 제주에서 자랄 아가도 주변 어른들을 '삼춘'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바다 건너 육지에서 삼춘들이 하나 둘 건너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조천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에서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 아기는 낯선 이의 품에 안겨 땡그란 눈으로 부모를 바라본다. 오랜 시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 수십 번 반복했던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이전처럼 다시 웃는다. 대화가 끊길 땐 혼자 꼼지락거리며 노는 아기를 바라보거나, 노을로 붉게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빠르게 흘러버린 하루에 야속함을 느꼈다.


 아이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어른은 대개 호칭으로 불린다. '삼춘'이라는 호칭은 우리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알려주는 슬픈 신호이기도 하다. 새로운 호칭에는 기쁨과 서운함이 비등하게 담기고, 우리의 이름은 조금씩 지워지고 잊혀진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줄, 오래된 친구들과 그들의 방문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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