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한 골목만 나가면 왕복 7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널찍한 횡단보도의 길이는 대략 25m 정도 된다. 보행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33초. 임산부와 노인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승자 없는 괴로운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우리는 항상 5초 정도를 남기거나, 5초를 초과한 채 건너편에 도달했다. 속도가 느려질 때 우리가 약자가 되어있음을, 잠시라도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세상에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카페에서 잡무를 처리하는 나를 두고 아기와 엄마가 먼저 집으로 총총총 출발했다. 나는 사거리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아기 엄마가 길을 두 번 건너는 모습을 지켜봤다. 부지런히 걸어도 제시간에 건너편에 도달할 수 없었다. 어둠이 깔리던 퇴근길 횡단보도는 우회전 차량에게 거침없이 침범당하고 있었다. 초록불의 불안한 점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