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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by RNJ


얼마 전, 아이와 올레길을 걷는 도중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우유와 빵으로 배를 불린 아이가 뒤뚱뒤뚱 걷던 도중에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고 하필이면 흙바닥이 아닌 돌멩이에 머리를 쿵-하고 박고 말았다. 상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가 흘렀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아빠와 아들. 세 남자는 목이 터져라 우는 한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치료를 끝냈고, 그 우렁찬 울음소리는 응급실 밖에 있던 엄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부모는 자식을 지키는 두개골이다. 자식을 보호하는 튼튼한 뼈이자 성장의 한계선을 그어버리는 유도리라곤 없는 장벽. 자녀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는 거대한 관성이 존재하는데, 보호자의 역할이 끝났음을 깨닫더라도 부모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쉬이 떼지 못하고 그리하여 부모와 자식은 필연코 충돌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의 풋향을 잊지 못한 부모는 성숙의 시기란 언제나 멀었다는 생각이 드나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생각보다 빨리 자라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채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이번에는 아빠의 생각이 단단히 틀린 것 같다.


코르크마개는 와인의 이탈을 막지만 아주 약간의 공기는 슬쩍 들여보내준다. 이때 너무 많은 공기가 유입되면 와인이 제대로 숙성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코르크를 적당히 팽창시켜야 하는데 와인병을 기울여 와인과 코르크를 접촉시키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오래도록 와인과 만나지 못한 코르크는 조금씩 삭아버리고 오프너를 끼워 넣는 순간 바사삭. 오래도록 지켜온 와인이 오크칩을 섞은 싸구려 식초로 전락하게 된다. 코르크는 와인에게 저항하되 와인과 잡은 손을 완전히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코르크는 언젠가 길을 터주고 와인을 흘려보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한때 코르크가 저항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꼬리가 폭 젖은, 제 역할이 모두 끝난 코르크는 평생 이 향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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