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77. 3박 5일 1화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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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모습.

볼 때마다 천지창조를 떠올리며 경탄한다.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은 어디야?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중국 장가계라고 대답할 것이다.


태국은 내 여행 리스트에 없는 나라였는데 미용장 모임에서 3박 5일 골프 투어를 간다고 했다. 얼른 신청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못 가볼 것 같아서다.


열두 명 일행 중 셋은 남자였다. 손 미용장, 회장님 부군, 박짱 부군. 무거운 골프가방과 캐리어들을 대전에서부터 버스에 싣고 내리고 공항 접수대까지 옮겨줬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회장님 부군과 박짱 부군은 골프를 즐겨 해외 원정까지 기꺼이 앞장선 것이다. 부부가 같은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회장님과 박짱은 전생에 여러 나라를 구했나 보다.


임금님 행차!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취타 연주도 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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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예술의 정점을 찍은 작품.

국가의 품격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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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뻐서 신는 순간 환상의 나라로 안내할 것 같다. 마흔 살이었으면 금방 샀을 텐데 절약에 도가 튼 73세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출국 수속을 끝내니까 3시가 훨씬 지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가로 올라갔다. 손님이 넘쳐나니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식당 주인도 있어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회장님 기지로 한식 전문 식당에 열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해물찌개를 먹었는데 밥맛이 기가 막혔다. 갓 찧은 품질 좋은 쌀로 정성껏 지어 차지면서 쫀득하고 풍미가 가득했다.


몇 년 전 급성 디스크를 앓은 뒤부터 버스나 비행기 의자에 앉으면 허리가 아팠다. 여섯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창 쪽에 앉고 통로 쪽에 장짱이 앉았다. 우리는 가운데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앞쪽을 쳐다보며 장짱이 말했다.

“자리 주인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러면 그렇지!"

“선배님, 기뻐하세요. 중년 남자 앞앞자리에 앉았어요!”

우리는 캭! 소리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소지품을 가운데 자리에 놓고 편하게 앉아 미루고 미루던 국어 공부 노트를 들었다. 장짱은 자기 계발 리더십 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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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태국을 향해 서쪽으로 갈수록 환해졌다. 낯선 경험이라 신기했다.


의자가 편해서 허리는 아프지 않았으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장짱은 계속 메모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드라마를 5회 차까지 보았다.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을 나서 통로에 서자 후끈했다. 두꺼운 겨울 옷이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남이 입은 털옷조차 숨이 막힐 정도였다. 여섯 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우리나라는 아파트 수도 계량기가 얼어붙고 태국은 30도가 넘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 갈아입을 장소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골프장에서 보낸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룸메이트는 골프를 같이 시작한 짝꿍이었다. 누구랑 지내도 상관없지만 짝꿍이라 더 편하고 좋았다. 벌써 밤 1시 반이 넘었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 전날은 잠을 설쳐서 몹시 피곤했다.


가방을 풀어 정돈한 뒤 간신히 세수만 하고 누웠다. 아침 6시 30분에 1층 로비에서 일행과 만나기로 했으므로 6시에 알람을 맞췄다. 또 잠을 못 자면 어쩌지? 걱정과 달리 금방 잠들었다.


빰빠라라 ~~♬♪ 빰빠라라 ~~♬♪


웬 음악소리지?

눈을 번쩍 떴다.

알람음이었다.

단잠에 빠진 짝꿍을 깨웠다.

“몇 시예요?”

“6시!”

우리는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골프백 커버를 벗겼다.

"다른 방도 다들 준비 잘하고 있겠죠?"

사위가 지나치게 고요한 게 수상쩍은지 짝꿍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기 시계를 보았다.

“선배님 지금 4시 25분 밖에 안 됐잖아요. 어쩐지 조용하더라.”

"엥?"

작년 네덜란드 갔을 때는 현지 시각으로 자동 변경되더니 이번에는 안 된 것이었다.

“미안, 미안. 빨리 더 자자.”


화장하고 옷까지 갈아입었지만 재빨리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78. 3박 5일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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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꿈 꾸던 열대의 일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출구 반대편으로 나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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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거였다.

골프보다 이런 색다른 풍경을 보려고 태국까지 온 것이다.


지붕만 덮은 기다랗고 낡은 카트를 타고 클럽하우스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이라 스치는 바람이 선뜩했다.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고 음식도 맛있는 한식이었다. 여행 오기 전 누군가가 고추장이나 김치 볶음을 준비한다고 했다. 회장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풀풀 날리는 밥만 맛없고 국과 반찬들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썬라이즈라군cc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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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얽히고설킨 나무 둥치


나와 짝꿍 박짱 부부와 한 조가 되어 두 명씩 카트를 탔다. 사진 찍는 것으로 기약 없이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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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보이는 사람들. 도대체 저들은 얼마나 일찍 왔기에 벌써 저기까지 갔을까?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첫 홀에서 드라이버를 쳤다. 셋의 공은 안 보일 만큼 시원하게 멀리멀리 날아갔다. 내 공은 연습 때 100미터씩은 나가더니 코앞에 톡 떨어졌다. 30 미터도 안 나간 것이다. 필드 경험 부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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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꾸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 시골 강가의 밭둑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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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야자수 뒤로 숨었다.

골프 실력이 형편없어도 행복 또 행복했다.


한낮은 30도가 넘어 더워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계속 카트를 타고 다니니까 괜찮았다. 태국의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로 북동 계절풍이 불어 시원하고 건조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늘에만 있으면 뽀송하고 시원한 거라고. 그렇기에 지치지 않고 오전과 오후 36홀을 돌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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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여기저기서 스프링 쿨러를 작동시켜 물을 뿌렸다. 멀리서 보면 꼭 분수쇼 하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1층 로비에 모여 다음 날은 30분 당겨 6시에 모이기로 했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 작은 생명체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무엇일까? 다가가니까 쏜살같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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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었다. 확대 또 확대한 모습.


밤 9시에서 11시까지 마사지를 받기로 점심에 예약했다. 고맙게도 방으로 직접 마사지사가 온다고 했다. 잠들까 봐 짝꿍과 계속 수다 떨며 마사지를 받았다. 전신 마사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허리와 목만은 계속 받고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나와 짝꿍은 전날 설친 잠까지 합쳐 꿀잠을 잤다.




79. 3박 5일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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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 피어있는 아련한 연못


골퍼들이 우리나라는 추워서 필드에 나가지 못하니까 태국으로 몰려 기다리는 시간에 지레 지칠 지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둘째 날은 스카이밸리 CC로 데리고 갔다. 라군 CC보다 필드 관리가 허술했고 우리나라 어디쯤의 습지와 구릉 지대인 듯 낯익은 풍경이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연꽃이 핀 작은 연못이 많고 가끔 부겐빌레아 덩굴 끝에 화려한 꽃이 피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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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조롱 달린 열매

우리나라에서 본 듯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와 아진 짱, 회장님 내외와 한 조가 되었다. 카트는 아진 짱이 몰았다. 소녀 같은 아진 짱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오솔길을 달릴 때 영화 타이타닉 OST를 부르며 팔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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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종류인가? 아니면 말고!


스카이밸리 클럽하우스

골프장은 별론데 클럽하우스 식당은 훨씬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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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부군은 틈만 나면 나와 아진 샘을 지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늘지 않는 나를 보며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가르치는 마음이 어떤지 잘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골프를 즐기는 회장님은 설렌다며 태국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27홀에서 끝내기야 했다. 회장님은 아쉬워 했지만 베짱이 같은 나는 언제나 9홀만 돌면 충분했으므로 뛸 듯이 기뻤다.


마사지 예약과 골프 치지 않은 9홀에 대한 환불을 받기 위해 라군 CC 클럽하우스로 왔다. 어린 직원들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결국은 한국인 팀장이 와서 회장님 내외를 접수하며 말했다. 한자리밖에 안 남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마사지 예약은 점심시간인데 그날은 다른 곳에서 먹었기 때문에 못했던 것이다. 나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짝꿍은 마사지를 굉장히 좋아했다. 어쩌나? 몹시 아쉬웠다. 한 자리는 혼자 방을 쓰고 있는 장짱으로 예약했다.


일찌감치 씻고 숙소에서 쉬니까 살 것 같았다.


짝꿍이 돌아왔기에 마사지 예약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역시 안 받아도 정말 괜찮다고 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자 짝꿍이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커피 끊은 지 30년 넘는 나. 여유롭게 차 마시며 공감하는 훈훈한 룸메이트로도 실격인 셈.


딩동! 벨이 울렸다.

옆 방 박짱이었다.

“언니, 우리 대신 마사지받아. 남편이 별로 좋아하는 거 같지 않아.”


결정을 못 하고 어정쩡하게 짝꿍을 보았다. 짝꿍 얼굴이 환했다. 그렇게 그날 밤도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사는 전날보다 솜씨가 덜했다. 짝꿍도 그렇단다. 마사지받는 동안 다리에서 쥐가 났다. 벌떡 일어나 발가락을 뒤로 꺾고 일어나 걸으며 갖은 손짓 몸짓과 앓는 소리로 의사를 표현했지만 끝내 소통되지 않았다. 한참 뒤 다른 쪽 다리에서도 쥐가 나서 괴로웠다.


마사지사가 돌아간 뒤 짝꿍이 말했다.

"박짱이 양보해 줘서 굉장히 고맙네요."

“나는 안 고마운데."

"아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박짱은 하고 싶으면 어떤 방해 요소가 있어도 물리치고 해내고 마는 사람이거든.”

그 사이 짝꿍은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그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꼬박 밤을 새우고 번히 날이 밝았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상태로 골프 칠 수 있을까? 오전에 자고 오후에만 칠까? 오전에 잠 안 오면 그 큰 후회를 어쩌려고? 내가 언제 또 태국에 오겠냐고? 그래, 그냥 나가보자. 정 힘들면 카트에 앉아 있으면 되니까!




80. 3박 5일 4화


지평선에서 뜨는 해

산골짜기에서 자라 지평선이 로망이었다.

야자수 사이로 보는 일출 하나만으로도 태국에 온 보람이 있다.


아침 먹는데 아래위턱 맞물리는 곳이 어긋난 것처럼 아파서 음식을 씹을 수가 없다. 잠 못 잤는데 왜 턱이 아플까? 간신히 다 먹고 빈 그릇을 들고일어나니까 핑 ~!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다들 커피 마시는 시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눈과 마음에 깊이깊이 담았다. 박짱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사근사근 다정하게 마사지 잘 받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제보다 솜씨가 덜했다며 심상하게 대꾸했다.

짝꿍이 밖에서 사진 찍자고 불렀다. 둘을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데 팔이 짧으니까 각이 안 잡혔다. 그 모습을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켜보던 박짱 부군이 다가와 찍어주며 말했다.

“마사지받자고 해서 남자가 무슨 마사지냐고 죽어도 싫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까 아주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어제는 자리 없을까 봐 아침 먹고 바로 예약해 버렸지요. 아, 그런데 저녁때 박짱이 언니 마사지 못 받게 됐다며 자꾸 양보하자는 거예요.”


그랬었구나!


박짱은 한남대 미용장 준비과정 반에서 처음 만났다. 알고 지낸 지 어언 20년이 된 것이다. 기개와 배짱이 남자 못지않아 오랫동안 미용사회 대덕구 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릇이 큰 인물이다. 소심하고 옹졸한 나는 그 깊은 배려와 사랑을 나만큼의 크기밖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박짱한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회의 결과 골고루 친해지기 위해 매일 파트너를 바꾸었다. 사흘째 날은 나, 손 교수님,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짓는 장짱과 모임에서 가장 젊고 예쁜 유짱이 같은 조였다. 나는 손석 미용장을 손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큰아들 대학 은사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라군 CC B코스 기다림도 만만치 않았다.


쐐기?

우리 딸 같으면 징그럽다고 경악할 것이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풀벌레조차 예쁘다.


이국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 찍고 준비 운동 하는 것도 잠시뿐 지루해서 몸이 비비 뒤틀렸다.


열나절도 더 기다린 끝에 차례가 되었다. 전날 회장님 부군한테 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한숨도 안 잤는데 헛손질도 덜하고 가끔은 멀리 가기도 했다. 공이 잘 맞으니까 36홀도 거뜬할 것 같다. 이날도 나와 장짱, 유짱은 손 교수님한테 티 꽂는 위치를 정확하게 배웠다.


나와 손 교수님 캐디는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주 서툴렀지만 성심성의를 다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골프채 건넬 때마다 손을 떨었다. 손이 저 정도면 마음과 몸은 더 떨고 있을 것이다.


어린 캐디! 내가 태국에서 태어나 열여덟에 골프장에 근무한다면 꼭 저럴 것이었다. 팁을 많이 주고 싶었지만 올바른 처사가 아닌 것 같아 규정액만 건넸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고액의 팁이 어린 캐디의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고.


그늘집에 도착했는데 줄이 한없이 길다. 풀꽃에 휴대폰을 대고 사진 찍고 있는데 등 뒤에서 까르르 소리가 났다. 유짱이 장짱과 캐디 둘을 카트에 태우고 고속 후진을 반복하며 숨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젊음은 참 싱그럽고 좋은 것이다.



선명하고 강렬한 열대의 꽃

박꽃과 비슷하다.

보라색 풀꽃 역시 낯이 익다.


점심 먹으러 클럽하우스에 들렀다. 커다란 똥파리들이 반찬 통으로 목숨 걸고 덤벼들었다. 비위생적이라 께름하면서도 헛웃음이 났다. 어릴 때 자주 겪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점심과 저녁에는 신선한 파인애플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반찬이 있다. 첫날부터 나오던 겉절이였다. 유채와 열무 중간이라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이태리 채소 루꼴라와 많이 닮았는데 루꼴라보다 줄기가 아주 많이 길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시큼하게 맛까지 들어 기가 막혔다.

오후 라운딩은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끝마쳤다. 손 교수가 초고속으로 카트를 몰았다.


상쾌! 장쾌! 통쾌해서 크게 소리쳤다.

오빠, 달려~!


숙소에 와보니 짝꿍은 돌아갈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언제 씻고 언제 머리 말리고 짐 정리하고 화장하나? 손이 느려서 일을 빨리 못 추는 나는 마음이 몹시 바빴다. 나이 많은 나 때문에 비행기 놓치는 일이 발생하면 절대 안 된다.


짝꿍이 반바지만 입어서 새까맣게 탄 내 다리에 물집 생기면 안 된다고 팩 붙이게 누우라고 했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짐 챙기는 걸 돕겠다는데도 말 걸지 말고 가만 내버려 둬 달라고 했다.

"골프가방 엘리베이터 홀에 가져다 놓고 올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세요."

후다다닥! 나름 번개같이 준비를 마치고 보니 어디 갔는지 짝꿍이 없다.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오니 복도에 서서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라군 CC 골프텔


공항에 도착했다. 클럽 하우스와 골프텔이 천국이었음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복잡하고 기다림 또한 끝이 없다.


수속을 끝내고 마주한 첫 광경

불교 분위기가 물씬 풍겨 인상 깊다.




라군 CC 직원 중에 유머가 뛰어난 이가 있었다. 외모에도 익살끼가 넘쳤다. 그가 우리 일행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바짝 다가서며 짝꿍과 유짱이 몰던 카트에서 불이나 하마터면 타 죽을 뻔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 말을 듣자 직원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 아깝다. 소리 없이 둘씩이나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기상천외, 천만 뜻밖의 반응에 가장 아끼는 짝꿍과 유짱을 한꺼번에 잃을 뻔했다는데도 사과 한마디 얻어내지 못하고 일행과 함께 큰소리로 웃어넘기고 말았다. 이토록 헐렁한 게 바로 나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말하면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멀티형 미용장들은 화장하며 전화 걸고 요리도 하고 계산하고 손님 배웅하고 한꺼번에 여러 일을 다 하는데 말이다. 둘째 날 저녁일 것이다. 짝꿍이 달러 많이 남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니까 태국돈이 많이 남아서 그런다며 내일 라운딩 비용을 같이 계산하자고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달러로 바꾸면 되는데 왜 저러나 싶어 복잡한 것은 질색이라 싫다고 딱 잘랐다.


나는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거절하기 전에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달러는 태국돈 바트로 무한정 바꿔주지만 바트는 달러로 바꿔주지 않을 수도 있잖겠는가.


내가 롤모델이라며 무작정 따르고 응원해 주는 귀한 짝꿍이다. 라운딩 비용 그냥 내줘도 되는데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발등을 찍고 싶다.




비행기 안은 추울 것이므로 골프텔에서 아예 기모 바지와 겨울 티셔츠를 입고 출발했다.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별수 없이 겨울 외투와 면세점에서 산 건망고가 들어있는 가방에 휴대폰도 넣었다. 그걸 들고 움직이니까 땀이 줄줄 흘렀다. 일행들은 내 모습이 안쓰러워 서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언제 사진 찍을 일이 생길지 몰라 맡길 수가 없었다.


이 모습 또한 젊은 일행들에게는 짐에 목숨 거는 노인의 아집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예상대로 기내는 썰렁했다. 얼른 외투를 꺼내 입었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 태국!


허리가 아파 비행기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피곤이 겹쳐 집에 가면 며칠 퍼져 있을 것이다.


여행 내내 서로 아끼며 돕던 일행 모두는 주말이라 다음날부터 샵으로 출근해 점심도 거르며 근무할 것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철의 미용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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