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희생'만 강요하지 말자 | 도시재생 마인드
도시재생사업은 공익사업이어야만 한다는 행정 공무원의 마인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공공예산이 투입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쇠퇴한 원도심 지역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 누구에게나 암묵적으로 동의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역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세부사업에 참여하는 주체들에게 '공익'의 목적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봉사'와 '희생'을 전제로 참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세부사업 성격에 따라 '공익'보다는 '수익'에 집중해야 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특히, 지역에 새로운 (운영) 주체를 영입하려는 사업들, 즉 청년, 문화예술인 또는 역량 있는 사람들을 낙후된 곳에 (굳이) 끌어들이는 사업이 있다면 더욱 '수익' 측면을 살펴주어야 한다. 또한 사업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조직의 지속가능한 운영이 필요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보조금으로만 유지되고 연명하는 사업을 만드는 것이 절대 도시재생사업의 의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재 유치와 조직화는 자신의 삶과 미래를 지역에 투자하라는 의미이므로 분명 ‘뭘 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갈까’를 함께 고민 해주어야 한다. 즉, 그들이 낙후된 곳에 들어와 활동하거나 살 수 있도록 ‘수익’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에서는 이런 논의의 표면화가 금기시된다. 나중에는 ‘너네들이 좋아서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까지 이른다. 적은 지원금으로 많은 '희생'과 '봉사'를 강요한다면 과연 누가 낙후된 이곳에 굳이 들어올 수 있을까. 사업에 참여하여 지역에 뿌리내리길 원하는 실행주체에게 먹고 살아갈 방법은 만들어 주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오래전부터 공익 목적만을 내세우며 새로운 예술인, 청년들을 지역에 유치한 결과 수많은 창업 및 공방공간과 거점들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공방은 사람들을 집객 하는 동기는 되나 실제 수익은 미미하다. '눈요기'로서만 역할을 한다. 돈은 먹고 마시는 다른 가게에서 벌어 수익 불균형이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이 활동하고 같이 수익을 낼 수 있으며 때로는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더욱 치밀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는 현장은 없다. 그저 따로 운영되어 누군가는 고통받지만 행정에서는 성공한 사업이라고 자화자찬하거나 성공한 것처럼 홍보하여 조작된 선진지(짐캐리의 트루먼쇼와 같은...)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와 방문자 입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양성이 생존하거나 번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해야 한다. 또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임대료와 인테리어비 등을 지원하는 것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구조를 짜도록 지원해야 한다(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단순히 레시피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운영 및 사업구조를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청년이든, 예술인이든 개인은 철저히 개인 창업과 활동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함께 행동하는 판'을 구축하는 것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한 공공의 역할일 것이다. 더불어 공공에서 운영하는 특화 공간과 주차장 같은 시설사업도 ‘수익’을 고려해야 하며 개인이 아닌 지역에 다시 환원될 수 있는 구조와 조직의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버넌스 판타지에 취하여, 끊임없이 되돌어가는 닥터스트레인지의 '도르마무'가 아닌 지속가능한 '사업'으로서 도시재생인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지역에 누군가에게 들어와 달라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가혹한 일이다. 그들의 삶을 담보로, 솔직히 이야기하면 소모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사업 참여자, 특히 행정에서는 공익을 위한 희생과 봉사만이 아닌 그들의 '생계'에 대해 노골적으로 함께 고민해 주어야 할 것이다.
행정, 본인들에게는 이 사업은 그저 하나의 일이고 업무일 테지만 실행자들에게는 인생이 달려 있음을 잊지 말자.
-본 글은 '도시재생 후진지 되지 않기(유룩출판, 2020)'의 내용을 수정, 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