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방금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남편 없이 보낸 긴 주말 동안 솔직히 월요일 아침을 기다렸다. “이제 조금 숨 돌리겠다” 싶은 마음. 그런데 막상 아이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 기대와 그리움이 한 아침 안에 엇갈렸다.
아침부터 아이는 투정이 많았다. 보통은 유모차로 동네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길가 고양이를 찾고, 하늘에 뜬 구름을 세며, 우리에게는 소중한 루틴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계속 “차 탈래”를 고집했다. 차를 타면 엄마랑 더 오래 같이 있는 거라고 믿었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걷고 싶었는데 삼켰다. 차로 가니 도착은 너무 빨랐다. 인사할 틈도 마음을 고를 시간도 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누고, 아이에게 뽀뽀를 하고,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길게 머물면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기에. 그런데 교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그 교실에 그냥 있고 싶었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내가 아이를 필요로 했다. 그 사실이 살짝 낯설다.
엄마가 된 이후 나의 정체성은 계속해서 다시 짜이고 있다. ‘독립적인 나’라는 오래된 문장이, 아이와 함께 사는 시간 속에서 단어를 바꾼다. 의존과 애착, 책임과 기쁨,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옆자리를 차지한다. 밤마다 내 침대에 올라와 쿵쿵 발을 구르며 깔깔대던 웃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짠!” 하고 나오던 얼굴, 딱 옆에 붙어서 책읽으면서 느껴지는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따뜻한 체온. 그 작은 순간들이 낮의 빈집에 오래 남아 잔향처럼 맴돈다.
사랑은 때로 떨어져 있을 때 더 또렷해진다. 함께 있을 땐 모서리가 흐릿해지던 감정이, 거리를 두면 선명한 윤곽을 갖는다. 오늘의 그리움은 아이를 잘 보냈다는 안도와, 내 안의 빈자리에서 동시에 자란다. 아이는 어느새 내 하루의 구조가 되었고, 그 구조가 비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를 본다. ‘엄마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나’ 사이를 오가는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 서툴지만, 배우는 중이다.
아이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나의 생활에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자꾸 그립다. 너는 내 일상의 리듬을 바꿔버린, 작고도 무서운, 그러나 사랑스러운 존재.
오늘도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또 만나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