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징조-6. 나의 어린 왕자

2장 징조

by 우주의메신저

6. 나의 어린 왕자


<나의 소중한 어린 왕자를 위해>


시불가실(時不可失)이란 말이 있다. 때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로 좋은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왜 뱀에게 물린 것일까?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요즘 갑자기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의 결말이 새삼스럽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장에 오랫동안 봉인했던 책을 끄집어 들었을 때 “인생 책”이 되었다. 첫 장을 넘겼을 때부터 쏟아지는 눈물은 아이에게 잘못했던 반성과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앞으로 아이와 내가 신뢰관계를 다지며 서로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하고 노력해야만 할까?



<사춘기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요즘 사춘기가 막 시작된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들이 비관해서 생을 마친다는 뉴스가 타인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뉴스를 접할 때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에서 전생에 관한 알고리즘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로 아이들은 호주머니 안에 자살하기 위한 약을 넣고 다녔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남동생이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너무 나무라지 마. 요즘 청소년 아이들 자살 많이 해.”라고 충고를 했던 절묘한 타이밍에 아이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춘기는 성장통이 아니라 양념통이다. 이 시기에 인생의 양념이 되어 주는 ‘희로애락’의 에센스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수평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시기>


아이에게 권위적이지 않았나? 어린 왕자가 첫 번째로 방문했던 별에 살고 있던 왕은 누구를 보든 다 자기 백성이나 신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품을 하거나 바닥에 앉는 그 어떠한 행위도 왕의 명령 없이 하지 못하게 금지한다. 나는 아이를 내가 정한 틀 안에 가둬 놓고 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봤다. 아이가 나보다 키가 커지면서 우리는 마치 친구가 된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피드백을 해 주지만 나 또한 아이를 통해 배우는 게 많다. 우리의 관계가 정신과 육체가 수직에서 수평 관계로 맞물리는 골든 클로스이다. 이처럼 사춘기는 나와 아이가 더 많이 성장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며 다방면으로 탐구하는 시기이다.


<주위가 아름답게 보일 때>


아이에게 바쁜 모습만 보이지 않았나? 어린 왕자가 방문한 네 번째 별은 사업가가 살고 있었다. 사업가는 너무 바빠서 운동할 시간도 산책할 시간도 없이 매일 책상에 앉아 숫자를 세었다. 나의 경우, 예전에 커피 추출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어서 아이가 구경을 왔었다. 한참 추출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이가 주위 사람들에게 재잘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는 항상 바쁘데요.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혼자서 늘 바빠요..~~~~” 나의 추출 시연이 끝나는 10분 동안 아이는 멈추지 않고 입담을 늘어놓았다. 마치 주위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 년이 지나도 나는 늘 바쁜 일벌레였다. 아이는 내 인생의 브레이크다.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주변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사춘기 아이는 섬세한 유리잔 같다. 금방이라도 금이 가서 내 곁을 떠나갈 것 같다. <어린 왕자>에서 장미와 어린 왕자처럼. 어느 날 어린 왕자의 별에 작은 씨앗으로 홀연히 날아와서 싹을 틔운 장미처럼 나에게도 고귀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 아이와 언쟁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의 인생이니까 그냥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둘까 고민하다가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 “ 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냥 잘해줘. “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알았어 “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그냥 잘해줘 “라는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어린 왕자처럼 소소한 행복과 희망을 아이를 통해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랑하는 방법>


정을 나누면 사랑이 싹튼다. 어린 왕자가 만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는 것을 가르쳐 준다. 길들이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인데 관계를 맺으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 버리는 매우 특별한 의식이다. 나는 아침에 유기묘였던 ‘똥순이’를 안아주고 나온다. 학대를 심하게 받은 후유증으로 몇 년 동안 날카롭게 경계했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자고 있어도 내 손길이 닿으면 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나라는 사람을 순수하게 받아 준다.


<마음을 내어 주는 것>

그러던 중, 얼마 전부터 길고양이를 길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삼색이’라고 불렀다. 털이 흰색, 검정, 갈색인 잡종이기 때문이다. 우리 피시방 건물 하수구 앞에 코를 처박고 쭈그려 앉아 하루 종일 하수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는 동생이 무심코 똥순이가 먹던 사료를 가져다준 이후로 내 동생을 알아보고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 그 뒤로 우리 가족들은 삼색이를 챙기게 되었고 삼색이도 똥순이 다음으로 특별한 고양이가 되었다.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이름을 불러 줬을 때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하수구 앞을 지나가면 늘 삼색이가 생각난다. 정확히는 우리가 삼색이를 길들인 게 아니라 삼색이가 우리를 길들인 셈이다.



<밀당은 다이아몬드가 되는 과정이다>


우리 가족은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역할이 있다. 몇 달에 걸쳐 편하게 게임만 하려고 하는 아이와 나에게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기 위한 밀당이 있었다. 밀당이 격해지다가 이내 원수지간처럼 으르렁대다가 뒤돌아서면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던 일상이 1학기 내내 지속되었다. 여름방학이 돼서 놀기만 할 줄 알았더니 스스로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길들임은 다이아몬드다. 왜냐하면 공을 들여 갈고닦다 보면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지구도 평화롭게 만든다>


사랑이 정답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봤던 영화 <제5원소>에서 5000년마다 천체의 배열로 괴행성이 생성되면서 지구는 위기에 처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제5원소가 굉장한 무기였을 줄 알았더니 고작 “사랑”이었다는 결말에 꽤나 실망했었다. 중2병은 변덕스럽고 짜증을 잘 낸다. 한껏 짜증을 낸 후에 여름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더니 한 걸음씩 내딛으며 다가왔다. 나는 어딜 가려고 하나 싶어 몇 걸음 뒷걸음치다가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멈췄다. 아이는 이내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몸을 실었다. ‘사랑이 필요하구나.’ 나는 그냥 아이를 꼭 안아줬다. 폭발 직전인 중2병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명약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은 사골이다. 잘 우려낸 사골은 보약이 되어 우리 몸을 이롭게 하듯이 사랑도 우리의 심신을 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왕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나는 지금도 많은 꿈을 꾼다. 그 꿈을 꾸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아이에게도 알려주고 함께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나’는 뱀에게 물리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 왕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어린 왕자와 오랜 시간에 걸쳐 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앞으로 더 많은 추억을 만들 것이다. 1학기가 끝났을 때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학교 선생님들이 준성이가 학기 초보다 많은 발전을 했다며 칭찬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의 고민은 바로 ‘수학’이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침착해졌다. “넌 할 수 있어. 지금도 정말 잘하고 있는 걸.”이라며 칭찬해 주며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준 것도 효과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커피 일도 제쳐 두고 반년에 걸쳐 골머리를 앓았던 난제 하나를 해결할 수 있었다.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며 사랑할 거야>


이처럼 사춘기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최근에 아이 문제를 고민하며 올렸던 글들을 통해 또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고민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춘기 아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어떤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 이서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남긴 말이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통의 한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렸을 때 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못 해줬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가슴이 시렸다.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사춘기는 나 자신이 후회하지 않도록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아이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 걸음 씩 또박또박 내딛는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1화2장 징조-5.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