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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Mar 20. 2024

그림책과 함께 한 나날들

들쥐들은 옥수수를 모았다. 나무 열매와 밀, 짚도. 단 한 마리는 달랐다. 그의 이름은 프레드릭. 그는 겨울에 필요할 만한 다른 것들을 모았다.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친구들은 말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수줍게 말한다. 

“나도 알아.”     




들쥐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프레드릭』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 아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 후로도 아이는 프레드릭 책을 자주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와 아기자기 놀아주는 엄마는 아니었다. 이유식을 맛있게 만드는 엄마도 아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책을 펼치면 말이 서툴렀던 아이는 손가락으로 토끼를 가리키며 엉덩이를 들썩들썩했다. 그림책 속에 있는 동물들을 찾으며 한참을 놀고 나면 아이는 하품을 했고, 우리는 낮잠을 자곤 했다. 


‘나비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가 되자 아이는 책 속에 펼쳐진 그림과 동시에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집을 들여놓고 나는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을 욕심을 냈지만 아이는 매일 같은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림은 밀쳐두고 글을 읽고 책장을 넘기려고만 했지만 아이는 한 페이지에서 더 오래 머물기도 했다. 영어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외계어를 대하듯 ‘아니야 아니야’하며 책장을 덮고 한글책을 가져왔다. 


심심한 날엔 집 근처 어린이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아이를 데려가면 마구 책을 꺼내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해 주위에 눈치가 보이는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분홍색 동그란 책상에 책을 몇 권 꺼내두고 아이와 함께 작은 아기 의자에 앉았다. 또 어떤 날은 혼자 가서 신간 코너에 있는 책들을 빌려왔다. 커다란 부직포 가방에 담긴 책이 늘어날수록 양손이 무거웠지만 책을 펼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휘파람이 나왔다.



일 이주에 한 번은 어린이 도서관에 드나들었다. 도서관에 다닌 후로 유명한 출판사의 전집을 검색하고 후기를 찾아보는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어떤 책을 빌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찾아두었던 추천 그림책 리스트를 캡처해 놓고 도서관에 가서 한 권씩 찾아봤다. 도서검색 컴퓨터에서 책이 있는 장소를 인쇄했다. 


아 783 가 ㅅ.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한 권을 찾는데도 한참을 헤맸다. 보다 못한 사서 선생님이 책을 대신 찾아주시기도 했다. 열심히 빌려온 10권 중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두세 권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그림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알아뒀다가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을 빌렸다. 앤서니 브라운을 알게 된 후 존 버닝햄, 백희나, 유리 슐레비츠, 요시타케 신스케라는 이름과 익숙해졌다. 




어린이책으로만 여겼던 그림책의 세계는 나에게 새로운 영역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엔 다양한 그림책을 접할 수 없었다. 자연히 나는 그림책이란 어린들에게 어른의 세계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려는 매개체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10명의 유럽 작가들이 작업하는 방식과 그들의 세계관을 인터뷰한 책이었다. 


신선했다. 

글과 그림이 각각 두 개의 트랙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글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그림이, 그림이 비워놓은 지점을 글이 채운다는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탈레크의 말, 표정만 봐도 유쾌한 세르주 블로크가 중요하다고 말한 노는 마음.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납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배우세요.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면 부모 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가담됩니다. 
그런 순간을 더 자주 가지세요. 
그렇게 세상이 강요하는 리듬을 거부할 힘을 차곡차곡 쌓으십시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에르베 튈레와의 인터뷰 중  p. 208      


지금껏 읽은 어떤 육아책보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나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책이었다. 나는 그림책이 그저 교훈을 주려는 접근이 아니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철저하게 아이들의 세계로 진입해 그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려는 시도 중 하나라는 걸. 그때부터는 그림책이 그저 아이들이 읽는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밤낮을 육아에 시달리다 보니 사오 년이 훌쩍 지나갔다. 책을 읽으려는 나의 시도는 매번 피로와 잠 앞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읽었던 그림책들은 또렷이 떠올랐다. 책 속 그림, 표지, 질감, 엉덩이를 내 무릎에 얹어놓고 뒤로 앉던 포즈, 아이가 좋아했던 페이지....


『지각대장 존』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낄낄거리며 통쾌하다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구해줘야 한다는 나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던 날, 페이지마다 숨겨진 돼지 그림을 찾느라 바쁜 아이들보다 내 마음을 더 알아줬던 『돼지책』. 목욕탕에 가서 요구르트를 사주는 날이면 그림 속 할머니가 이상하다면서도 아이가 그리 좋아하던 백희나의 『장수탕 선녀님』이 떠오른다.      


그림책 속에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날들, 사람, 시선, 감정이 존재했다. 



피천득 선생님은 유치원 선생님이 주신 빨간빛 파란빛 색종이의 색깔이 그렇게 화려하게 보인 건 그때 이후로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찬 그때를 찬란한 시절이라고 썼다. 


나는 아이들이 그림책 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그 찬란한 시절을 조금 더 연장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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