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폴란드 일기 15
베를린 중앙역은 유리로 덮힌 외관이 인상적이다. 승강장이 지상층, 중간층, 지하층으로 나뉜다. 선로가 세 개 층에 놓여서 탈 기차가 어느 승강장에 멈추는지 잘 살펴야 한다. 베를린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념품 가게와 약국, 음식점들이 있다.
승강장에 도착했는데 아직 기차가 오지 않았다. 독일 기차는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인데, 문제는 다음 연결편이었다. 우리는 크라쿠프로 갔다가, 오시비엥침(Oświęcim)로 옮겨가는 일정이었다. 크라쿠프로 가기 위해 기차를 한 번 갈아타는데, 두 기차간 간격이 10분밖에 없었다. 이 10분이 매끄럽지 않다면 우리는 크라쿠프로 가는 기차를 놓칠 뿐만 아니라 오시비엥침까지 가는 길도 꼬인다. 첫날 비행기 연착이 자꾸 떠올랐다.
다행히 5분 뒤에 기차가 들어왔다. 통로에 두 캐리어를 놓고 스프링 와이어로 감은 다음, 자물쇠까지 채웠다.
베를린이 조금씩 멀어졌다.
한때 동서로 나뉘었던 도시, 그 흔적이 많이 남은 곳, 전쟁의 흔적과 그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기념물, 그 흔적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어른들, 그들이 함께 만들어갈 역사가 베를린을 가꾼다.
폴란드 기차로 갈아탔다. 독일에서는 이동수단에서 마스크를 쓰는데, 폴란드에서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간혹 노약자들은 쓰는 경우가 있었다. 예약할 때 자리도 지정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앞뒤로 앉아야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앉은 가족도 있었다.
크라쿠프에서 내린 다음, 캐리어를 끌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중앙역과 시외버스 터미널이 가까이 있는데, 이 중간을 잇는 쇼핑몰을 통과해서 층계를 올라야 했다.
최종 목적지인 ‘오시비엥침’으로 가는 버스는 두 종류다. 마이크로 버스는 트렁크를 넣는 곳이 따로 없어서, 큰 짐을 들고 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다가 큰 버스를 탔다. 요금을 버스에서 직접 냈다.
숙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근처로 잡았다. ‘아우슈비츠’는 이곳 지명을 독일식으로 부른 것이다. 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이다. ‘오시비엥침’은 폴란드어로 ‘성스러운 땅’, 혹은 ‘축복받은 땅’이라는 뜻이었다. 그 땅이 지금, 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끌어안고 있다.
버스가 수용소 앞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에 닿았다. 카운터에서는 우리가 묵을 방이 장애인들이 묵을 수 있는 곳이며, 흡연이 가능한 객실이라고 했다. 앞 조건은 마음에 드는데 뒷 조건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방은 넓직했고, 문턱이 없었으며, 화장실에도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흡연 가능한 객실답게 벽지와 방 구석구석에서 담배 냄새가 짙게 풍겼다. 가져온 섬유 탈취제를 일단 뿌렸지만, 소용없었다.
해가 더 지기 전에 수용소 앞을 보고 싶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오고가는 그곳은 텅 비었고, 앞을 지키던 관리인들도 퇴근했다. 수용소로 들어오던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철길, 빈 수용소, 커다란 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표지판. 내일 이곳으로 간다. 벌써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설명하는 한글 가이드를 녹음한 프로그램을 결제해서 미리 들었다. 직접 보기 전부터 마음이 울렁거렸다.
예약할 때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가방 크기는 10×20×30cm 이내여야 했다. 집에 있는 모든 보조가방을 꺼내 크기를 쟀고, 내가 들 가방 하나와 작은 에코백 가장자리를 꿰매 크기를 맞췄다. 각자 들 가방에 카메라, 노트, 펜, 물, 휴지, 손수건 등을 챙겼고 나는 나비를 넣었다.
마치 뤼순 감옥을 답사하기 전처럼, 온갖 복잡한 마음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