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내가 다시는 헬스클럽에 나보다 고인 물인 한 어르신이 있었다. 나이는 대략 70살 정도 된 것 같았다. 어르신은 매일 헬스클럽이 문을 여는 아침 7시에 온다. 나도 여간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지만 고인 물 어르신은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 고인 물 어르신에게 별거 아닌 별거인 것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그날 아침에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어르신은 먼저 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밖에서 탈의실 커튼이 흔들거릴듯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나가 보았다. 어르신은 카운터에 서있었고 그 옆에 헬스 관리자가 보였다. 몇몇의 사람들도 보였다. 어르신은 관리자가 건넨 듯한 휴대폰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고인 물 어르신은 전화 너머의 누군가와 언쟁을 해나갔다. 그 누구 하나도 져줄 마음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어르신의 목소리는 헬스 밖 사람들도 들릴만큼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르신의 옆의 관리자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빨리 상황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이런 사늘한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멀리서 보고 있는 나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이유는 이랬다. 어르신은 체구가 작아 작은 옷을 원했다. 그래서 관리자에게 말했는데, 안된다고 하였다. 어르신은 따져 물었다. 관리자는 자신은 아르바이트 생이라며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책임자와 통화해 달라고 말했다.
관리자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거듭된 어르신의 요구에 마지못해 관장과의 통화를 하게 해 주었다.
어르신은 관장에게 작은 옷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 어르신에게 관장은 헬스클럽의 옷은 프리사이즈라며 어르신의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저번에 있던 친구는 해주었다며 관장에게 말했다.
그랬다. 지금 관리자는 온 지 얼마 안 된 관리자였다. 아마도 이전 관리자는 어르신의 요구에 자신이 작은 옷을 골라 미리 챙겨두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관리자가 바뀐 지금의 관리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르신은 관장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관장 역시 그런 어르신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특혜라 생각했다. 물론 작은 옷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작은 옷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르신이 올 때마다 미리 작은 옷을 찾아 챙겨두어야 한다. 이 번거로운 일은 모두 관리자의 몫이다.
이전 관리자는 자신의 번거로움을 감내하면서 어르신에게 작은 옷을 찾아 챙겨두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 관리자의 몫이었다. 새로운 관리자에게까지 그 몫을 다하라고 하는 건 권한 밖의 일이다. 어르신의 요구는 관장으로 인해 거절되었고 거친 언쟁은 관장의 환불해 주겠다는 소리에 헬스장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십여분의 소동 끝에 어르신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어르신은 얼굴이 상기되었고 탈의실에 들어가 자신의 짐이 찾아 나가버렸다. 관리자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멍하니 어르신이 나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나는 이런 상황이 관장과 어르신의 서비스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았다. 월 4만 원의 헬스 이용료에 옷이 제공된다 것은 관장 입장에서는 옷은 말 그대로 서비스였다. 반대로 어르신의 생각은 월 4만 원에 헬스와 옷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르신의 요구는 정당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란? 주인이 손님에게 주는 것이지, 손님이 주인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르신의 요구가 잘못됐다는 아니다. 정당히 요구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서비스를 행할 주인이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다만 어르신과 관장 사이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언쟁은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나에게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일부 손님들은 내가 디지털 도어록을 설치를 하러 가면 미리 사둔 도어스톱퍼, 도어크루저, 안전고리 같은 문 부속품들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서비스로 설치해 주세요"
나는 당황스럽지만 최대한 차분히 말한다.
"안방만 도배하러 불러놓고 도배지 사놓고 건넌방, 거실 다 해달라고 하면 해주나요?"
"일부는 서비스로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는 서비스로 해드릴 수 없습니다."
자영업자와 손님과의 동상이몽 서비스
자영업자가 바라보는 서비스는 해주는 것이지 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