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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오 Oct 23. 2024

뜨레뻬르소네(20)

20. 혼인지에서

칠수가 말했다. "하여튼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으유...." 그 말에 정희와 완수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어갔다. 이들은 고요한 혼인지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더욱 깊이 새기며, 제주도의 역사와 신화에 푹 빠져 있었다.

성산봉에서 내려온 세 사람, 정희, 칠수, 그리고 완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해안가가 아닌 내륙으로 들어가며 혼인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희가 세운 계획표에 따르면, 그들의 다음 목적지는 혼인지였다. 혼인지는 역사적, 신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 제주도의 명소로, 탐라국의 세 신이 혼례를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전설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오며 혼인지의 역사적 중요성을 더해주었다.


온평리 마을을 지나 1132번 지방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는 길, 세 사람은 차 안에서 조용히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성산봉의 해안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해안의 넓고 푸른 바다와는 달리, 내륙으로 들어가며 도로 양옆으로 푸른 들판과 작고 고즈넉한 농촌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움 없이 길을 달리는 소들은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세 사람의 기분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었다. 완수와 칠수는 점점 눈앞의 풍경에 빠져들며 생소함과 신비로움을 느꼈고, 정희는 그들에게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혼인지는 탐라의 세 신인 고, 부, 양이 각기 다른 곳에서 왔다가 처음으로 만나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전설에 따르면, 그들이 각각 자신이 지니고 온 씨앗과 가축들을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했고, 이후 탐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져요.” 정희의 설명에 칠수와 완수는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그들은 정희가 준비한 이야기에 매료된 듯, 더욱 궁금해진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 신비로운 장소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정희는 혼인지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경관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오래전, 제주도 개척의 기원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 보면, 여기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전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혼인지로 향하는 길은 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과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런 소박한 풍경에 점점 편안해지며,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그곳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상상하고 있었다. 정희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도 세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각자의 생각에 잠기며, 자연과 역사의 조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며 완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니, 참 신비롭네...” 그 말에 칠수도 동의하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장난기 많고 농담을 잘 던지던 두 사람도 이 순간만큼은 진지해졌다. 이곳의 역사적 깊이와 정희의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정희는 길을 안내하며 세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여기서 신들이 처음으로 서로를 만나고,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고 생각하면, 이 장소가 얼마나 상징적이고 특별한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혼인지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탐라의 시초를 상징하는 곳이죠.” 그녀의 말은 세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경건하게 만들었다.


도로를 따라 약 630미터쯤 들어간 지점, 정희는 “여기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야 해요.”라며 차를 멈췄다.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려 숲길로 접어들었다.


혼인지로 이어지는 길은 잘 정돈된 돌길로 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정희는 “여기쯤인가 봐요,”라며 숲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점점 이 장소에 대한 기대와 흥미로 가득 찼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마침내 혼인지에 도착한 세 사람은, 작은 연못과 그 뒤로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정희는 여기서 잠시 멈춰, 혼인지 연못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이 연못이 바로 그들이 혼례를 올린 장소예요. 이곳에서 그들이 서로를 처음 만나고, 가축과 씨앗을 나누며 탐라국을 세웠다고 하죠.”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진지하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고요한 혼인지의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그 전설 속 신화적인 순간을 마음속에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고대의 신들이 느꼈을 평화와 설렘을 상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마음에 새겼다.


완수는 설명하는 정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마음의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정희도 눈빛으로 그 편지를 받아내고 있었다.


칠수가 말했다. "하여튼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으유...." 그 말에 정희와 완수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어갔다. 이들은 고요한 혼인지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더욱 깊이 새기며, 제주도의 역사와 신화에 푹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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