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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 Oct 24. 2022

공격적인 초등학교 선생님

복싱 6개월 차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복싱을 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성향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성향에 따라 선택한 직업인 초등학교 선생님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주변에 복싱을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복싱이나 킥복싱을 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한 두 명씩 생겨나고, 복싱을 하는 일반 여성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 본격적으로 체육관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인 조카가 복싱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신기하게도 복싱을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없었는데 복싱을 하는 초등학생들은 많았다. 우리 아이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체육관에 등록을 했던 것 같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아직도 나보다 잘하는 초등학생들은 많다.

  전혀 공격적이지 않은 내가 공격을 하는 격투기를 익히면서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공격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허용되는 수준으로 다듬어졌을 뿐 공격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격이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은 아니다. 스파링은 말할 것도 없고 쉐도우 복싱을 딱 3분만 해보면 계속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체력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방어를 하는 것도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며,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어야 공격이 가능하다. 이토록 최선을 다해 공격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순순히 공격을 당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싱 연습을 하고 나면 실제로 공격한 것 아닌데도 마음이 후련하고 개운하다. 어쩌면 격투기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기 위해서 수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숨겨진 본성을 끄집어내서 풀어내면 무의식에 남아있는 공격성이 줄어든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알고 상대를 공격하는 올바른 방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섣부른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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