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꿈의 죽음

어른을 위한 동화책

by 광규김

한 아이가 죽었다.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 생명은 허망하게 끝을 맞이했다. 우리는 미래라 말하는 존재를 잃었다. 우리의 앞날과 현재를 말해주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뉴스는 한동안 시끄러웠다. 언론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고, 시민의 여론은 금새 달아올랐고 마침내 끓는점에 도달했을 때 법은 움직였다. 그러나 인기를 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까.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된채 급조된 법안만이 통과되었고 현실은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아가. 여전히 세상은 아프고도 아프구나.


조용히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역 아동 센터’ 내가 일하는 복지 단체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나의 마지막 날이다. 이곳에서의 시간도 끝이 다가왔고 내가 만나온 아이들과 작별을 준비해야했다.


이들은 아직 작별이란 단어를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이들은 이별에 익숙했다. 포기하는 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환이야. 오늘은 선생님이랑 수학을 먼저 공부할까?”


“좋아요 선생님. 문제집 가져올게요.”


종종걸음으로 뛰는 귀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한 아이가 문제집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석환이라고 부르는 초등학고 2학년의 어린 친구였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찾아오는 친구가 적네.”


쓸쓸한 작별이 될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환이야 너는 꿈이 뭐야?”


시간이 어느덧 저녁에 가까워졌고, 이곳에서 나의 마지막 순간도 성큼 다가왔다.


“바이올리니스트에요.”


“기특하구나 너는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선생님도 항상 응원할게.”


오늘은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으로 기억되기 보다 내가 전해준 추억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나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기보다 어떤 여운이 남는 고전 명작 같은 그런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환이야. 선생님은 이제 가볼게”


이제 끝이 다가왔고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려했다. 그런데 내 등에 티 없이 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어와 박혔다.


“하지만 돈이 없잖아요. 돈이 없는데 꿈이 무슨 소용이에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래도 넌 꼭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같은 허황된 희망은 심어줄 수 없었다. 아이의 현실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가난은 꿈을 박탈한다. 가난하면 꿈조차 사치였다. 무언가를 바라고 미래를 생각한다는건 현재에 그만큼 여유가 있을 때에나 허락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개발되지 못할 애매한 재능은 저주와 같았고, 시작조차 하지 못할 꿈은 마음의 족쇄가 될 뿐이었다.


나는 말없이 아동센터를 나왔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 한참을 울었다. 광진교 위를 건너는 야경을 등지고서 나는 울었다. 유독 밤이 아름다웠다. 도시가 깨어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쉼을 잃었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겠지.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에 아름답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겁쟁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아이의 죽음이 무력했듯 나는 무력했다. 한 아이의 꿈이 허무하게 끝을 맞이했듯 나의 삶은 허망했다. 누구도 제대로 도울 수 없고 이끌 수 없는 나는 없느니만 못한 목자와 같았다. 어느날 성자는 무리를 보며 목자 없는 양 같아 불쌍히 여겼다 말했다. 수많은 목자들이 있었지만 양을 위해 몸을 던진 목자는 없었다. 양들은 방치됬고 어린 아이들은 죽어갔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살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을 발딛고 서서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시작할 이야기가 마냥 즐겁고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은 먼저 떠나간 아기들에 대한 송가를 바쳐야겠다 생각했다.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현실에 섯불리 다가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외롭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삶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마치 성자가 우리들을 찾아왔듯 인격안에 찾아갈 바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가지를 흔들며 기뻐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까.


한떨기의 동백이 지는 계절이었다. 많은 어른들이 아기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바쳤다. 수년전 물속에 빠져 죽어가던 나의 친구들 처럼. 어른들은 항상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다음에서야 뱉을 수 있는 그 쉬운 말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어른들의 몫이었다. 미래를 바꾸는건 젊은 우리의 역할이라 말하지만, 미래가 될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꿈과 함께 저 바다속으로 힘 없이 침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