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김서방
어쩌다 보니 황 씨 집안 장녀와 결혼해서 맏사위가 된 김서방.
집에서는 '오구오구' 막내대접받다가 처가만 가면 맏사위가 된다. 심지어 아내보다 나이도 어리니 애취급(?) 받기 딱 좋으련만 김서방은 대체로 의젓하다. 처가에서도 김서방을 예뻐해서 결혼하고 첫 생일에는 좋아하는 알탕을 끓여주셨는데, 얼마나 푸짐하고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단다.
15년 전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가족들이 아무도 감지 못한 채 밤새 옆에서 간호만 하던 상황, 김서방은 처가에 도착해서 장모님을 살피더니 이상하다며 응급실 가자고 업고 계단을 내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 조금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 거라 해서 다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후로 김서방은 장모님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뇌출혈 이후 몇 년간 회복기를 지낸 장모님은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예전처럼 음식도 다른 것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 뭐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뜨개질이나 간단한 만들기 같은 거 해 보면 어떠세요?"
다정한 김서방의 질문에 장모님은 아무 말 없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몇 년이 지나 장모님은 갑자기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모님의 알탕과 솜씨 좋은 음식들을 십 년 가까이 그리워하던 김서방이었지만,
무엇인가를 하는 장모님의 모습이 보기 좋다며 따뜻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맛본 장모님의 빵은 어딘지 모르게 퍽퍽하고, 애매한 맛이었다.
7-8가지 종류의 빵을 선보이면 그중 2-3가지 정도가 맛있달까?
그때부터 처가에 갈 때는 식사는 하되, 빵 먹을 배는 남겨두고 갔다.
아메리카노를 같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날, 장모님은 호두파이를 구워주셨다.
평소 견과류를 좋아하는 김서방을 위해 견과류가 들어간 빵을 만들다가 호두파이로 발전한 것이다.
"우와, 이거 정말 맛있어요."
"아예 샵을 오픈해서 판매하시면 어떠세요?"
호두파이는 정말로 맛있었다.
사위를 생각하며 호두를 듬뿍 넣은 호두파이는 필링은 얇고 달지 않으면서 고소하고 바삭하고 쫀쫀하고 혼자 한 판도 다 먹을 듯한 맛과 비주얼이었다. 그 후 호두파이는 매년 장모님이 구워주시는 우리 가족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다.
장모님은 시그니처 메뉴를 주변에도 자신 있게 구워서 선물하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어떤 분이 호두파이를 먹어보고 너무 맛있다며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7개를 한 번에 굽느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셨다.
"우리 김서방이 맛있다고 칭찬해 줘서 자신 있게 만들고 있어."
"맞아. 형부가 칭찬한 게 엄마가 항상 기억난다고 하더라고."
옆에서 처제도 거든다.
"에이, 이건 저만 맛있는 게 아니라 다 맛있다고 한다니까요."
"맞아요, 외할머니. 저희들 다 좋아해요."
얼마나 칭찬들을 하는지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올 설에는 2월에 생일인 우리 부부를 위해 호두파이를 두 판이나 구우셨다.
한판은 초를 꽂아 생일축하를 하고 그 즉시 모두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한판은 집에 가져가라고 주셨다. 밥을 잘 먹어야 디저트로 호두파이를 먹을 수 있다는 엄마의 협박(?)에 나물 비빔밥을 순삭 한 막둥이에게는 내 몫의 호두파이를 더 나눠주었다.
명절 말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모처럼 시간 되는데 잠시 차 한잔 하실래요?"
(우리 친정은 차로 15분 거리이다, 그럼에도 평상시에 자주 가지 못한다)
"아니야. 한동안 못 쉬어서 오늘은 푹 쉬려고."
"그래요. 오늘 김서방도 출근하고 해서 한번 전화해 봤어요."
"김서방 명절인데도 출근했어? 어쩐지 저번에 봤을 때도 피곤해 보이던데."
"요즘 주말도 없이 바빠요. 명절에도 집에 있으면 계속 자더라고요."
"그랬구나. 잘 챙겨주고...."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와닿는다.
모녀지간에도 어려운 것들을 섬세한 김서방이 중간에서 해주고 있다. 그 덕에 이번 설은 더 따뜻했다고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