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못 읽은 책의 반납기한이 다가온다면?
1. 그냥 반납한다
2. 반납일을 무시하고 연체를 감수하며 끝까지 읽는다
3. 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자 반납하고 다시 대출한다
1,2,3번 다 해봤는데 1번은 뭔가 마무리가 안 된 느낌이 드는 게 좀 께름칙하고, 2번은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연체가 풀릴 때까지 매우 불편하다. 3번은 만족도가 높아서 요즘 자주 선택한다. 그런데 3번을 선택하려면 책을 대출한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주시는 관내 도서관에서 대출하면 관내 어느 도서관이든 반납할 수 있기에 때에 따라 입맛에 맞는 곳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오늘도 난 3번을 선택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 자꾸 연기되어서 그 날짜에 맞춰 읽으려고 갖고만 있다가 반납기한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의 팁은, 대출한 도서관 말고 가까운 다른 도서관에도 이 책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반납하고 그곳의 책을 대출하면 된다. 난 오늘 재대출 할 책이 세권이나 되어서 다른 도서관에 이 세 권이 다 있는지 검색하기 귀찮아 대출한 도서관으로 직진하기로 함)
오늘 가는 도서관은 버스로 4 정거장이라, 아파서 학교에 못한 막둥이가 혼자 잘 놀다가 자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급한 마음으로 나온 참이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타려고 하는데 순간 문이 닫혀서 문에 낄 뻔한 걸 자동인식으로 문이 열렸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타려는데 버스가 앞쪽으로 휑하니 갔다. 그쪽에서 기다리는 다른 승객을 태우러 간 거였다. 버스기사님은 내가 문에 꼈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다. 느낌이 안 좋았지만 한시가 급하니 일단 탔다. 3번째 정류장을 지나자마자 하차벨을 눌렀다. 도서관이 왼쪽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버스가 쏜살같이 달렸다. 내릴 정류장을 지나 다음 정류장으로... 탈 때부터 좀 이상했던지라 한 정거장 정도는 감수하자 하면서 다음 정류장에 내릴 준비를 하는데 어라? 또 지나친다. "기사님, 세워주세요. 내릴 거예요." 급한 마음에 몇 번을 소리쳤지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다음 정류장이 종점이라 버스가 섰다. 난 입술을 꽉 깨물고 하차문쪽으로 가다가 멈춰 섰다.
"기사님, 왜 세워달라는데 안 세워주셨나요?"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말했다.
"벨소리가 안 들렸어."
"무슨 소리세요? 벨을 눌렀는데..."
"난 안 들렸다고."
표정변화 없이 안 들렸다는 변명만 반복하는데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시간낭비라는 판단이 섰다.
"됐어요. 그만 얘기하죠."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기사님께 그렇게 쏘아붙이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나도 엄청 화가 나는지라 씩씩대며 버스에서 내렸다.
길을 되돌아 걸어가면서도 분이 안 풀렸다.
저런 분은 어디다 신고를 해야 하나? 내가 왜 이 길을 되돌아가야 하지? 한 시간 이내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마음은 급하고 방법은 없으니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이 죄다 공사 중이어서 불편함과 짜증은 과속되었는데, 그 와중에 푸르른 나뭇잎들이 자꾸만 손을 흔들어댔다.
'그래, 내 다리가 튼튼하고 이 정도쯤은 걸을 수 있으니 이런 상황은 감수하고 넘어가자.' 푸르미들 덕에 긍정의 마음이 조금 생겼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설 즈음에는 거의 평정을 되찾았다.
'어쨌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정신 차리고 필요한 책만 챙겨서 얼른 나오는 거야.' 재대출 목록 중에는 막둥이가 다 못 읽은 '푸른 사자 와니니 4'도 있었다. 지난겨울 열심히 읽는다 싶더니 한번 멈춰서는 도무지 4권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재연장하면 어떤 회유책을 써서든 읽도록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재대출 한 와니니를 가방에 넣었다. 막둥이의 책을 챙기고 나니 집에 혼자 있을 게 걱정돼서 다음에는 절대로 급하게 오지 말다는 다짐과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까 당한(?) 게 있어 같은 번호는 타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빠른 걸음으로 다른 버스를 타는 곳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다시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냈으니 그분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화를 낼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가? 에 대해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급한 상황에서 정류장을 지나쳐 계속 달리는 버스기사에게 화가 나는 건 정당하다. 그럼 화를 내고 나서 그걸로 시원해졌으면 좋겠는데 왜 난 지금 기분이 찝찝하고 불편한 것인가? 생각해 보니 이미 그전부터 예민해 있었다.
오늘은 학습지교사로서 본사에 출근하는 날이었는데, 막둥이가 열이 나서 갑작스레 출근을 못했고 그것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 이전부터는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의 시간 조율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이미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그 마지노선을 건드린 게 버스기사님이고, 버스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는데 안 세워주니 감정적으로 폭발한 거다. 만약 기사님께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사과하셨다면 난 괜찮았을까? 그 순간은 괜찮았겠지만, 아마 그다음 어디선가 폭발했을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는 게 아닐까.
생각이 조금 정리되니 그새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계속 걸어가기엔 햇살이 너무 따가워 근처를 돌아보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평소 같으면 그걸 못 기다리고 그냥 걸어갔을 텐데, 그랬다가 오늘 남은 에너지를 길에서 다 써버릴 것 같아 좌중 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막둥이가 달려 나와 나를 끌어안았다.
"혼자 있는 거 안 무서웠어?"
"아까 엄마 가시고 바로 잠들었다가 중간에 깼는데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혼자 잘 놀고 있었어요."
"잘했네. 기특하다! 엄마가 와니니 다시 빌려왔어. 이번엔 3주의 기간을 줄 테니 열심히 읽어보자."(도서관의 대출기간은 2주이나 대출하고 난 다음날부터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면 대출한 책 옆에 <연기신청>이란 버튼이 생기는데 그 버튼을 클릭하면 1주가 연장되어 대출기간이 3주로 늘어난다)
집에 돌아오니 밖에서 있었던 일들은 잠시 꿈을 꾼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 도서관에 가면서 당한 봉변(?)은 어쩌면 내 마음의 근력을 더 키울 수 있게 만들어 준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피폐해 있는지 깨달았고, 어차피 세상 일은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으니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살자...
그리고 이번 달 무지 애쓰면서 살아낸 나를 좀 격려해 주자. 힘들었던 2025년 4월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