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Jan 29. 2021

산부인과 인턴이  왜 거기서 나와!

출산을 왜 구경하니? 동물원이 아닌데..

가족의 출산은 싶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첫 출산은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지방으로 갑자기 부대를 배치를 받으면서 덩달아 같이 내려오게 된 가족은 임신 기간 동안 계속되는 불만을 호소했다.


동네에서 나름 잘한다는 산부인과를 다녔다. 선생님도 매우 다정해 보였다. 매번 같이 갈 수 없기에 가족이 혼자 진료를 보러 가는 날이 늘어났다. 항상 다녀온 날이면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자신의 몸에 변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아기 상태를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GOOD very good. Baby is very strong. Dont worry!


완벽한 영어였다. 자상한 선생님이지만 연세가 많으셨다. 어떤 질문에도 답변은 항상 동일했다. 가족은 각종 유튜브와 캐나다에 누나들에게 화상통화를 하며 힘들게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란 놈은 새로 배치받은 부대에 적응하느라 크게 신경도 못 써주고 야근에 야근을 부르며

월, 화, 수, 목, 금, 금, 금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출산이 임박해 오자, 가족은 서울에서 출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양 임신부 출산 경험이 많은 닥터가 있다고 소개받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치료를 받고, 장례까지 치른 대학 병원이었다. 너무 많이 다녔던 병원이라 친근감까지 있었다. 그래서 서울 어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가족은 한국어를 배웠다고 자부심이 강했지만 나의 냉정한 점수는 10점 만점에 2점이었다.

3살 정도의 수준의 어휘와 스피킹 스킬 그리고 6살 정도의 리스닝 능력의 보유자

그리고 영어는 알파벳이 전부인 어머니와 한 달간 동거가 시작되었다. 물론 주말마다 올라갔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면서 산부인과 하나 믿고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아내가 안쓰럽기는 했다.


엄마는 챙겨주고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부분을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생 놈이라도 영어 울렁증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버버벅,,, 더 더 더,,,

물론 너무 큰 희망사항이었다.


그렇게 양수가 터지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엄머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갔다고 한다. 아침에 며느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다급히 전화를 걸었으니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나에게 전화가 왔다. 진통 때문 인지 내가 전화를 해도 통화는 연결이 안 되었다. 한참 뒤에 병원에 간호사가 받았다.

출산이 예정일보다 빨리 진행될 거라고 빨리 오라고 했다. 지금 출발해도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서둘러 휴가를 내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서두르는 딸이 밉기까지 했다.


허겁지겁 장시간 운전을 해서 병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진통이 시작된 지 시간이 꽤 흐른 상태였다. 분만실에 아내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을 잡아 주는 일이 전부였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호흡을 조절하며 힘겨운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아 이렇게 아기가 태어나는구나"


딸아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다. 앞으로 아빠가 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진통이 심해지면서 곧 아기가 태어날 거 같다고 했다. 간호사를 포함해서 사람들의 행동은 바빠지는 듯했다.  

깊은 호흡과 반복되는 진통으로 지쳐 보이는 아내를 보니 안쓰러웠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낳을 때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셨겠구나.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같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혼란의 시간 속에 갑자기

분만실 문이 열렸다.


흰색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좁은 분만실은 갑자기 흰색 벽지로 도베가 된 느낌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서양인 출산 과정..... 짧은 몇 마디를 조용히 건네고

아내 출산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기에 무시하고 가족만 신경 썼다.

출산에 집중한 아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의사들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건너편에 그들이 계속 거슬렸다. 귓속말로 수군수군 대는 것 같았다. 대학병원에 산모로 왔는데 왠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 계속 나를 불쾌하게 했다. 일단 출산을 마치면 따져야겠다고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축하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작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안도의 한숨과 쉬고 있었고 갑자기 나는 분주해졌다. 딸을 처음 보는 순간 반해버렸다.

보자마자 눈, 코, 입, 귀, 그리고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는지 빠르게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쭈굴쭈굴한 조금만 얼굴을 보니 모든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인증샷을 찍고 아내에 요청에 따라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정신이 없어서 왜? 갑자기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구경하듯이 보고 갔냐고 따지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가족의 의견을 존중해서 태어난 딸은 우리에게 바로 오게 되었다. 캐나다에 산후조리원 문화가 없어서 인지 산모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문화에 잘 적응을 못했다. 물론 이해하기로 했다. 딸은 첫날부터 우리 부부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울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나만 바라보라고 딸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3일 동안 입원을 하고 바로 퇴원을 해서 집으로 왔다. 물론 육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의사 선생님들 만나러 병원에 갔다. 진료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출산 때 일이 떠올랐다. 가족이 먼저 나가고 나는 물었다.


"선생님 그때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온 거예요?"


심각하게 물어보는.........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학생들인데 서양인 출산을 볼 기회가 적어서요. 사전에 동의를 구한다는 게 죄송합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출산에 인종이 중요했던가? 피부색과 체형이 다른 것을 직접 보면 훌륭한 산부인과 닥터가 되는 건가??


"불쾌하네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다음부터 다른 외국인 가족들에게 이런 상처 주지 마세요.

실수하신 겁니다. "


화가 났지만 출산 전에 꼼꼼히 진료를 잘 봐줬던 것을 생각해서 짧게 말하고 나왔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문화 가정의 시작은 처음부터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다문화 출신이 이런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출산이라는 경이로움 앞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출산하는 산모에게 더 많은 신경과 관심을 가져줘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편안한 마음으로 출산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 구경꾼 의사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부디 그런 경력으로 미래의 다문화 가족 출산 시에 필요한 도움과 따뜻함으로 감싸주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논문이나 기타 연구를 위한 행위였다면 계속 미워할지도 모른다.)



친정국 출신 산모돌보미

다문화가정 산모돌보미 지원 사업,

왜 필요한가요?

2019년 11월 기준, 광주광역시 다문화가정 출생아는 449명으로 광주시 전체 출생의 5.4%를 차지합니다.

2019년 광주시 전체 출생이 전년 대비 8.1% 감소한 반면, 다문화가정의 출생은 오히려 1.1%가 증가했는데요.      

[출처] 출산 다문화가정을 위해 친정국 출신 산모돌보미가 함께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en.pimg.jp/053/662/932/1/53662932.jpg 




광주에서 시행 중인 출산 장려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지역마다 생긴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형편에 따라서 다르지만 출산을 한다고 먼 곳에서 한국으로 가족들이 와서 있기에 많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 외롭고 힘든 과정을 친정국의 동료가 같이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도 출산 이후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냈다. 미안하고 부러웠던 것은 주변에 한국 부부들이 일이 생기면 가족과 아이를 친청에 보내는 것이었다. 다문화 가족들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14시간 비행기 태워서 보낼 수도 있다. 생활비와 비행기 값까지 하면 한 달 기준 천만 원 넘는 돈도 같이 지출하게 된다. 문제는 아기가 어릴 때 그런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그 시기에 장거리 비행까지 해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다문화 정책 중에서 어쩌면 이런 정책이 가장 필요한 정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앞에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엇인가 특별한 혜택을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시스템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감에 있어서 필요하고 다문화 가정의 입장을 듣고 정책을 만들고 반영하면 더 좋은 사회통합이 가능 할 것 같다.


#다문화정책 #다문화출산 #출산경험 #다문화가정 #출산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 #임신


https://brunch.co.kr/@yhjade/90

https://brunch.co.kr/@yhjade/88


이전 01화 아버지 때문에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