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기문록』의 가자도괘화茄子倒掛花와 자목련

조선시대 필기류 문헌의 식물 (2)

by 경인

17세기 문인 신명규申命圭(1618~1688)의 필기 『묵재기문록』에 화훼 관련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묵재기문록』 권3에서 “호남의 고개 남쪽 해안 가 여러 고을에는 신기한 꽃 3종이 있는데, 서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귀양살이할 때 토착주민들에게 얻어서 뜰 가에 심었다.”*라고 하면서 꽃나무 3종을 소개하고 있다. 신명규가 1681년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본 꽃이다. 그 중 하나가 당시 강진에서 ‘가자도괘화茄子倒掛花’로 부르던 ‘옥란화玉欄花’이다. 기록을 좀 더 살펴보자.



“또 하나는 옥란화玉欄花이다. 꽃 모양이 자주색 가지(茄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하고, 꽃은 매우 풍성하다. 나무는 목련과 비슷하며 잎 또한 목련과 비슷하지만 크고 짙은 청색이다. 민간에서는 이 꽃을 ‘가자도괘화茄子倒掛花’라고 부른다. 그 꽃이 북쪽을 향해 피기 때문에 향북화向北花라고도 하며 향일화向日花라고도 한다. 강진康津 만덕사萬德寺 뒤 골짜기에서 가장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가지 꽃과 열매 (2021.9.22 과천)


위 글에서 ‘가자茄子’는 가지(Solanum melongena)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고결한 봄의 전령사 목련, 백목련, 자목련 – 목란木蘭, 신이辛夷’를 쓸 때 참고했던, “높이는 3~4장丈으로 먼저 꽃이 핀 후 잎이 난다. … ‘붓꽃. 또한 가디꽃’이라고 한다.”**라고 기록한 『물명고』의 자목련을 설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시 ‘가디’를 ‘가지’의 고어로 추정했지만, 가지 열매는 보통 땅을 향해 자라기 때문에 자목련을 왜 가지꽃이라고 했을까는 의문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신명규의 ‘옥란화玉欄花’ 묘사에서 “자주색 가지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하다는 표현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디꽃’이라고 기록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련보다 10여일 늦게, 잎이 나지 않은 가지마다 자주색으로 피어 오르기 시작하는 자목련 모습을 떠올리자니, 영락없이 가지 열매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자목련 꽃봉우리 (2024.4.12 영주 부석사) - 꽃봉오리가 길어지면 가지 열매가 맺혀 거꾸로 자라는 모습과 유사 (큰화피편 6개인 이 꽃이 자목련인지는 추가 동정 필요)


신명규의 이 기록은 확실히 자목련(Magnolia liliiflora, 중국명 자옥란紫玉蘭)을 묘사한 것이다. 현재에도 서울 경기 지방에서는 정원수로 심어진 목련이나 백목련, 자주목련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자목련은 쉬이 볼 수가 없다. 영남이나 호남지방의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영주, 안동, 군산, 순천 등지에서 자목련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신명규는 중부지방에서 흰색 꽃이 피는 목련만 보다가 자주색 꽃이 피는 자목련을 보고 신기해서 기록했을 터이다.


(좌) 자목련 꽃 (2023.4.9 안동), (우) 늦게 핀 꽃 (2018.5.13 순천)
(좌) 자목련 잎과 열매 (2023.7.3 군산), (우) 자목련 잎 (2025.5.27 안동)


마지막 구절에서 “강진康津 만덕사萬德寺 뒤 골짜기에서 가장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라는 표현은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 만덕사는 현재 백련사로 불리며 동백숲으로 유명하니, 혹 ‘가자도괘화’를 동백나무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백은 서울 문인들도 익히 알고 있던 꽃이었을 것이고, 더구나 잎이 무성한 상태에서 피는 동백꽃을 ‘가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물명고』에서는 ‘옥란玉蘭’을 “자목련(辛夷)과 비슷한데 꽃이 순백색이다.”라고 하여 백목련을 뜻하기도 하였으므로 문맥을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봄엔 강진 백련사 골짜기에 자목련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자목련 꽃 봉오리들이 가지가 거꾸로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으로 피기 시작하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끝)


* 湖南嶺下緣海諸郡 有異花三種 京洛人莫之知也 余謫居時 得於土人 而種于庭除畔 … 其一玉欄花 花狀如紫茄子倒掛 花甚盛 樹似木蓮 葉亦如之 而大且深靑 土俗號爲茄子倒掛花 以其花開向北 故亦曰向北花 亦云向日花 康津萬德寺後洞最盛成林 – 묵재기문록 (강독시간에 번역한 내용을 참조하여 일부 수정함)

** 辛夷, 高三四丈 先花後葉 花初出 苞長半寸 而尖銳 儼如筆頭 重重有青黃茸毛 及開似蓮花而小 紫苞紅焰 作蓮及蘭花香 붓꽃 亦名 가디꽃 - 『物名考』

+ 표지사진 - 자목련 꽃 (2023.4.9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