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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pr 16. 2021

고결한 봄의 전령사 목련, 백목련, 자목련

목련木蓮, 목란木蘭, 신이辛夷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노란 개나리와 함께 하얀 목련이 풍성하게 피면 우리는 비로소 봄을 실감한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우리가 목련으로 부르는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에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목련(Magnolia Kobus DC.)과 중국남부지방 원산의 백목련(Magnolia denudata Desr.)이 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정원에는 대부분 백목련이 심어져 있지만 가끔 목련을 식재하기도 하다. 또한 꽃잎 양쪽이 모두 자주색인 자목련(Magnolia liliiflora Desc.)도 있고, 백목련의 변종으로 꽃잎 바깥쪽만 홍자색인 자주목련도 있다. 이 목련은 고대에도 시인이나 민초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존하는 <시경>의 시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중국 남방 문학을 대표하는 굴원屈原(기원전 353~278)의 초사에는 나온다. 아마도 목련이 중국에서도 남부 수종이어서 그럴 것이다.


백목련, 2020.3.28 성남


老冉冉其將至兮         노년이 점점 다가오니

恐脩名之不立            고결한 이름을 남기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朝飲木蘭之墜露兮      아침에는 목란木蘭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 마시고

夕餐秋菊之落英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지는 꽃잎을 먹습니다.

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 실제 제 마음이 고결하고 한결같다면

長顑頷亦何傷            오랫동안 먹지 못해 야윈들 무엇이 아프겠습니까?

-      이소離騷 중에서


자목련, 2019.4.28 안동


鸞鳥鳳皇 日以遠兮    난새와 봉황은 날마다 멀리 날아가고

燕雀烏鵲 巢堂壇兮    제비와 까마귀들은 전당과 제단에 깃드네

露申辛夷 死林薄兮    신초申椒와 신이辛夷는 무성한 숲에서 죽는구나

腥臊幷御                 비린내 누린내 나는 것은 모두 중용되고,

芳不得薄兮              향기로운 것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네

陰陽易位 時不當兮    음양이 자리를 바꾸었으니 때가 맞지 않네

懷信侘傺                 충정을 품고도 뜻을 잃어 방황하니,

忽乎吾將行兮           나는 홀연히 떠나가리.

-      구장九章 섭강涉江 중에서


초나라 왕족이자 재상이었던 굴원이 유배당했을 때 썼다는 ‘이소離騷’와 ‘구장九章 섭강涉江’의 이 구절들은 역량과 충심을 가졌음에도 쫓겨난 신세지만 고결한 마음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결의가 느껴진다. 중국 남부 초나라 지방에 자랐을 목란木蘭과 신이辛夷는 모두 이러한 심정을 대변하는 나무로 목련의 일종이다.


<본초강목>에서 이시진李時珍은 목란木蘭에 대해, “난蘭 향기에 연꽃 비슷하여 이름이 붙었다. … 목란木蘭은 가지와 잎이 모두 성글고 꽃은 안쪽이 희고 바깥은 자주색이다. 또한 사계절 피는 것도 있다. 깊은 산속에 자라는 것은 매우 큰데 배를 만들 수 있다. 그 꽃은 홍紅, 황黃, 백白의 여러 색이 있고, 그 나무의 수피는 세밀하고 속은 황색이다.”라고 했다. 또한, 신이辛夷에 대해서는 “신이화辛夷花는 가지 끝에서 처음 나올 때 포苞의 길이가 반촌半寸(약 1.5cm)이고 끝이 뾰족하여 붓 머리처럼 엄연儼然하다. 겹겹이 청황색의 털이 덮여있고 길이는 반분半分(약 1.7mm) 정도이다. 피어나면 작은 연꽃 비슷하고 잔盞 정도 크기이다. 자주색 포苞에 붉은 꽃술로 연꽃 및 난초 향기가 난다. 꽃이 흰색인 것은 사람들이 옥란玉蘭으로 부른다.”**


이러한 <본초강목>의 설명을 보면 목란과 신이가 뚜렷이 구별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식물지>나 <초사식물도감> 및 몇몇 본초학 서적을 참고해보면, 현대 중국에서는 대개 목란木蘭을 백목련(Magnolia denudate Desr., 중국명 옥란玉蘭)으로, 신이를 자목련(Magnolia liliiflora Desr. 중국명 紫玉蘭)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목란과 신이를 모두 ‘자목련’으로 보기도 한다.


(좌) 목련 꽃눈, 2020.2.15 남한산성, (우) 백목련 꽃눈, 2020.1.18 남한산성 - 꽃눈이 붓 모양이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동의보감탕액편>에서 신이辛夷를 ‘붇곳’, 즉 붓꽃으로 우리말 훈을 달았다. ‘붇곳’은 목필木筆의 ‘붓’과 관련이 깊은 이름으로, 목련 류를 가리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물명고>에서는 신이辛夷에 대해, <본초강목>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높이는 3~4장丈으로 먼저 꽃이 핀 후 잎이 난다. … ‘붓꽃. 또한 ‘가디꽃’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목란木蘭은 “신이辛夷의 한 종류”라고 했다. 그리고 옥란玉蘭은 “신이辛夷와 비슷한데 꽃이 순백색이다”라고 했다. <선한약물학>에서도 신이辛夷를 목란과木蘭科 ‘붓꽃’으로 훈을 달았다. 이러한 해석은 대개 <본초강목>의 설명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고전번역서들은 목란木蘭을 ‘목란’, ‘모란’, ‘목련’ 등으로 번역하고 있고, 신이辛夷는 ‘하얀 목련’, ‘개나리’, ‘신이화’, ‘붉은 목련꽃’, ‘백목련’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목란木蘭을 모란(牧丹)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오역이다. 그러나 신이辛夷를 ‘개나리(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로 보는 것은 좀 검토해볼 사안이다.


개나리, 2020.3.21 성남 - 신이화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발간된 <한국의 들꽃과 전설>에서는 개나리 그림 옆에 한글과 한자로 ‘신이화 莘荑花’로 적어두었다. 플로렌스 여사가 머물렀던 전남 순천 지방에서는 개나리를 ‘신이화’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실려있는 ‘육서책六書策’에서 물명이 잘못된 사례를 설명할 때 “연교連翹를 신이辛夷라고 하고”라고 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한약재 연교連翹는 당개나리(Forsythia suspensa [Thunb.] Vahl) 열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당개나리 대신 개나리를 대용한 듯 하고, <조선식물향명집>을 보아도 개나리(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를 연교連翹라고 하고 있다. 아마도 일부 민간에서 개나리를 ‘신이화’로 불렀던 듯 하고, 일부 문헌에서도 개나리를 ‘신이화’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 문헌에서 인용하거나 소교목의 맥락을 가지고 있으면 신이辛夷는 ‘자목련’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목련, 2021.3.26 성남


<화암수록>에 7등품 꽃으로 목련木蓮이 “속칭 목부용木芙蓉이다. 담박한 벗으로 흡사 백련白蓮과 같고 향기가 매우 진하다. 흑목련黑木蓮도 있다. 습기를 좋아한다”****로 소개되어 있다. 속칭 木芙蓉이라고 했고, 같은 책의 ‘화개월령花開月令’을 보면 음력 6월에 핀다고 되어 있으므로 부용(Hibiscus mutabilis L.)을 가리키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목련과 백목련은 이른 봄에 피는데 반해 부용은 8월부터 피기 때문이다. 부용은 한문으로 목부용木芙蓉, 거상화拒霜花로 불렸으며 목련木蓮으로도 불렸다. *****


올해는 코비드19(Covid-19)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매년 한식 즈음에 형제들이 함께 하던 선친의 묘소 참배도 아직 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1588-1644)의 칠언절구 “합귀당盍歸堂에서 경치를 읊다”를 감상해본다.


辛夷初落小桃開 자목련 꽃이 지니 복사꽃 피어나고******

杏臉梨粧次第催 살구꽃 배꽃 차례로 꽃 단장 서두르네

客意正迷寒食後 나그네 마음 한식寒食 지나 참으로 어지러워

滿江風雨獨登臺 비바람 몰아치는 강가에서 홀로 누대에 오르네


<끝 2020.4.11>


* 권용호 옮김, <초사>에서 인용

** 木蘭, 其香如蘭 其花如蓮 故名 … 木蘭枝葉俱疏 其花內白外紫 亦有四季開者 深山生者尤大 可以爲舟 … 其花有紅黃白數色 其木肌細而心黃. 辛夷, 辛夷花 初出枝頭 苞長半寸 而尖銳儼如筆頭 重重有青黃茸毛順鋪 長半分許 及開則似蓮花而小如盞 紫苞紅焰 作蓮及蘭花香 亦有白色者 人呼爲玉蘭. – 본초강목

*** 辛夷, 高三四丈 先花後葉 花初出 苞長半寸 而尖銳 儼如筆頭 重重有青黃茸毛 及開似蓮花而小 紫苞紅焰 作蓮及蘭花香 붓꼿 亦名 가디꼿 – 물명고

**** 木蓮, 俗名木芙蓉, 淡友 恰似白蓮 香氣郁烈 且有黑木蓮 好濕 – 화암수록

***** <물명고>에서 목련木蓮을 목란木蘭, 목부용木芙蓉, 벽려薜荔, 즉, 백목련, 부용, 벽려(Ficus pumila L.)의 3가지 서로 다른 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 조선시대 문인들이 신이辛夷를 정확히 자목련으로 인식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신이’꽃이 진 후 복사꽃이 핀다고 했는데, 대개 자목련은 백목련보다 늦게 복사꽃과 비슷한 시기에 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백목련일 가능성이 있다. 시어임을 감안하여 그냥 목련으로 번역한다.

*******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문일평文一平(1888~1936)이 쓴 수필 “白松의 美”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朝鮮에는 世界에 없는 단 하나인 『扇木』이라는 植物이 있다. 扇木은 그 果實이 團扇狀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와 같은 名稱을 붙인 것인데 그것이 辛夷花 비슷하나 그 葉이 조금 작고 그 花는 희고도 어느덧 桃花色을 띤 아름다운 植物로서 忠淸北道 鎭川草坪面 以外에는 없다고 한다. 學術上 아주 興味있는 植物인 同時에 園藝의 觀賞用으로서도 매우 價値있는 植物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구절에서 선목扇木은 우리나라 특산종인 미선나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선목扇木과 비슷한 신이화辛夷花는 개나리를 말한다. 이로 보면 일제강점기 언론에서도 개나리를 신이화로 표기한 듯하다. (2021.9.24 주석 추가)

+표지사진: 자목련, 2019.4.28 안동 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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