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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r 12. 2021

맹자 성선설 논쟁에 등장하는 버들 기류杞柳는?

키버들과 갯버들, 왕버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7/8월호)

선친께서는 평생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주경야독하셨다. 주로 사서와 삼경을 읽으셨는데, 아직도 나는 선친의 글 읽던 소리가 두 귀에 들리는 듯하다. 벌써 20여년이 흘렀지만, 선친이 가신지 오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선친이 그리워지면 논어며 맹자, 중용, 대학 등 아버지 손때가 묻은 책을 펼치곤 했다. 그러다가 맹자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구절이 사람의 본성에 대해 고자告子와 논쟁하는 부분이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대 사상가 맹자孟子(B.C.372~B.C.289)가 말한 유명한 문장인데, 다음과 같다.


고자가 말하였다. “성性은 기류杞柳와 같고, 의義는 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인의仁義를 행함은 기류를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기류의 성질을 순順히 하여 배권桮棬을 만드는가? 장차 기류를 해친 뒤에야 배권을 만들 것이니, 만일 장차 기류를 해쳐서 배권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의를 한단 말인가? 천하 사람을 몰아서 인의를 해치게 할 것은 반드시 그대의 이 말일 것이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맹자가 역설한 성선설보다도 그의 말솜씨에 더 감탄했었다. 기류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당시에는 나무를 잘 알지 못해서 그냥 지나쳤다. 맹자 번역서나 <고전번역DB>를 보면, 기류杞柳를 흔히 버들, 버드나무, 갯버들, 고리버들, 키버들 등으로 다소 혼란스럽게 번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버드나무(Salix)속의 나무로 <한국의 나무>에 실린 종만 하더라도 18종이 있다. 기류가 이 중 어떤 버들에 더 근사한지를 알면 이 성선설 논쟁이 더 재미있어 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기류에 대해 알아본다.


키버들 수형, 2021.3.7 탄천- 키버들은 키나 고리를 만드는 버들이라는 뜻을 가졌다.
키버들 (좌) 2018.9.9 금대봉, (우) 2020.2.15 남한산성


우선 <주자집주>에서는 “기류杞柳는 거류柜柳이다. 배권桮棬은 나무를 구부려서 만든다.  술잔 같은 종류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본초강목>에서 파기설簸箕舌이라는 기물器物에 대해 “(곡식을) 까부러서 (껍데기를) 날려보내는 데 쓰는 ‘키’다. 남쪽 사람들은 대나무를 사용하고, 북쪽 사람들은 기류를 써서 키를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즉, 기류杞柳는 구부려서 삼태기나 키 같은 기물을 만드는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성어식물도감>에서는 맹자의 기류杞柳를 현대 중명 광류筐柳(Salix linearistipularis (Franch.) Hao)로 보고 있는데, 이명으로 기류箕柳, 파기류簸箕柳(Salix suchowensis Cheng) 등을 들고 있고, 옛사람들이 기류로 일컬은 버들에는 여러 종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기류를 Salix purpurea, 즉 키버들 류로 보고, 이명으로 거류柜柳, 파기류簸箕柳, 택류澤柳 등을 기재하고 있다.


키버들, 2018.9.9 금대봉 - 키버들 잎은 마주나기를 한다.


우리 문헌으로 <물명고>에서는 기류杞柳를 “물 가에 자란다. 잎은 거칠고 (나무)결은 붉다. 수레 바퀴통을 만들 수 있다. 가는 가지를 모아 배권桮棬을 만든다. 지금의 ‘누온버들’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면서 기류箕柳와 같다고 했다. <광재물보>에서도 “누은버들, 가는 가지를 모아 불에 쬐어 부드럽게 하여 구부려서 상자를 만든다”*****고 설명하고 교목류로 분류하고 있다. 참고로 <물명고>와 <광재물보>에는 수양水楊 및 포류蒲柳의 우리말 이름으로 ‘갯버들’이 나오므로, ‘누은버들’은 갯버들과는 다른 버들일 것이다.


그런데, 1800년대에 ‘누은버들’로 부르던 버들은 무엇일까? 누은버들과 비슷한 이름으로, ‘누은갯버들(Salix gracilistyla Nakai)’과 ‘누은산버들(Salix meta-formosa Nakai)’이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되어 있다. 전자는 갯버들 류이고, 후자는 지금의 눈산버들인데, 이 나무는 북부지방 고산 지대 습지에서 80cm정도까지 자라는 소관목으로 가지로 그릇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그러므로, <물명고>의 ‘누은버들’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관목류 버들인 키버들(고리버들, 箕柳)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명물기략>에서는 기류를 ‘개버들’로 보고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키버들, 2019.11.21, 남한산성 - 이 키버들 가지로 버들고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의 기류杞柳를 어떤 버들로 보는 것이 좋을까? 중국의 광류는 관목 및 소교목으로 8m까지 자란다고 하여 우리 키버들과는 다르다. 한편, 파기류簸箕柳는 관목이고, 또 <중국식물지>에 현대 중명 기류杞柳(Salix integra Thunb.)도 실려 있는데, 이는 <대한식물도감>에서 개키버들(Salix purpurea var multinervis)로 기록한 나무의 이명이므로, 키버들 류이다. 또한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도 키버들의 한자명으로 기류杞柳와 홍피류紅皮柳를 적고 있다. 이런 정황과 가지를 구부려서 그릇을 만드는 용도로 미루어, 맹자의 기류를 ‘키버들(Salix koriyanagi Kimura)’로 이해해도 좋을 듯 하다.


퇴계의 제자인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은 처사 삶을 살다 가신 분인데, 기류배권杞柳桮棬을 소재로 한 ‘맹자의 말을 사용하여 벗에게 주다 (用孟子語贈友人)’라는 시를 남겼다.


誰戕杞柳爲桮棬             키버들 해쳐서 그릇 만든다고 누가 말하나?

養性存心孟子云             본성을 기르고 마음을 보존하자 맹자는 말했네.

牛山莫使牛羊牧             우산에서 소와 양을 먹이지 말고

萌蘖從今禁斧斤             움이 트면 이제라도 도끼질을 금해야지.


天下英才敎育新             천하의 영재를 교육하여 일신하고

浩然之氣莫蒙塵             호연지기 길러서 몸을 더럽히지 말자.

寧慙見屈無名指             어찌 무명지 굽은 것이 부끄러우랴?

直恐良心不若人             양심이 남들 같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네.


권호문은 짧은 시 한편으로 맹자의 사상과 자신의 삶의 지향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키버들과 관련된 고전의 표현을 하나 더 소개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고열지顧悅之는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는데 머리칼이 일찍 세었다. 간문제가 ‘경은 왜 먼저 세었는가?’라고 묻자, ‘신은 포류蒲柳 같은 자질이라서 가을이 올 듯 하면 잎이 져버립니다. 송백 같은 재질은 서리를 맞아도 더욱 무성하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고사로부터 ‘포류蒲柳’는 약한 체질을 뜻하게 되었는데, <이아>에도 “양楊은 포류蒲柳이다”라고 했다.


갯버들, 2021.3.7 성남 - 탄천 가에 무리로 자라고 있는 모습
갯버들 (좌) 2021.2.27 화악산, (우) 2019.11.2 용문산


<중약대사전>에는 수양水楊의 이명으로 포류蒲柳가 나오며 중국명 홍피류紅皮柳(Salix purpurea L.)라고 하여, 키버들 류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 <물명고>와 <광재물보>에서는 포류蒲柳를 ‘갯버들’로 보고 있다고 앞에서 언급했는데, 이는 중국과는 다른 해설이지만 관목류 버들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도 갯버들(Salix gracilistyla)의 한자명으로 포류蒲柳와 수양水楊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포류蒲柳는 갯버들 정도로 번역하면 좋을 것이다. 가끔 이 포류를 “창포와 갯버들”로 번역하는 문장을 만나는데, 이는 잘못이다.


정약용 선생의 시 중에 ‘옥천 산중의 당숙부 집을 방문하다 (訪堂叔父玉泉山居)’라는 시에 포류蒲柳가 나오는데, 이는 갯버들을 묘사한 듯하다.


蒲柳重重洞壑沈             갯버들 겹겹이 골짜기에 잠겼는데

龍門黛色馬頭臨             용문산 검푸른 빛 말 머리에 다가오네.

野棠花暖雲溪轉             아그배나무 꽃 난만히 핀 구름개울 돌아드니

山杏陰濃草屋深             개살구나무 그늘 아래 초가집이 그윽하네

東郡煙霞專作主             동쪽 고을 풍광 독점하여 주인으로 즐기시니

西江風浪不驚心             서쪽 강의 풍랑에도 놀라지 않네

但敎庋得書千卷             시렁 위에 서책이 천 권이나 쌓였으니

棲息何須借上林             어찌하여 궁궐에서 셋방살이 하시리요!


이 시에서 포류는 약한 체질을 뜻하는 대신 녹음이 우거진 시절 개울 가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약용은 다른 시에서 “부끄럽게도 갯버들처럼 쇠약한 몸으로, 오악을 구경하리라는 뜻을 헛되이 품었다네. (蒲柳慚衰弱 空懷五嶽心)”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세설신어>의 고사는 알고 있었다.


흔히 은거의 상징인 도연명陶淵明은 집 주변에 버들 다섯 그루가 있었다고 하여 오류선생五柳先生으로 불린다. 이때 버들은 수양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지난 겨울 김태영 선생과 의성 사곡을 지나다가 정말로 멋진 왕버들(Salix chaenomeloides Kimura) 세 그루를 만났다.


왕버들 세그루, 2021.1.9 의성 사곡 토현리
왕버들, 2021.1.9 의성 사곡 토현리 - 왕버들의 한자명은 하류河柳, 귀류鬼柳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차를 멈추고 감상했는데, 작은 쉼터로 꾸며져 있는 그곳에는 왕버들의 내력을 설명하는 푯말이 서 있었다. 진성이씨 사곡파舍谷派 입향조로 퇴계 이황의 3종손인 동강桐岡 이희정李希程(1532~1612)이 토현리 마을을 개척하면서 오류선생을 본따 왕버들 다섯 그루를 심었는데, 그 중 3 그루가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마도 1600년 이전에 심었을 것이니 400년이 훌쩍 넘은 내력을 지녔다. 이분은 농운정사에서 직접 퇴계선생의 훈도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도산서원 농운정사 앞에도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봉화 청암정에도 왕버들 고목이 자라고 있다.


왕버들 고목, (좌) 2018.5.27 봉화 청암정, (우) 2018.5.28 도산서원 농운정사 앞


조선 중기의 선비들이 오류선생의 귀거래사를 떠올리며 생각한 나무가 수양버들이 아니라 왕버들이었을까? <한국의나무>에 의하면, 수양버들은 중국 원산으로 언젠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전국적으로 공원수로 심는 나무이다. 아마도 조선 중엽까지도 지방에서는 쉽사리 수양버들을 구할 수 없어서, 대신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버들을 심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왕버들은 확실히 기류나 포류와는 달리 그 장대한 풍채가 강건한 체질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2021.3. 12,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7/8월, pp.94~101)


* 告子曰 性 猶杞柳也 義 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棬. 孟子曰 子能順杞柳之性而以爲桮棬乎 將戕賊杞柳而後 以爲桮棬也 如將戕賊杞柳而以爲桮棬 則亦將戕賊人以爲仁義與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夫 - 맹자

** 杞柳 柜柳. 桮棬 屈木所爲 若巵匜之屬 – 맹자집주

*** 簸箕舌, 簸揚之箕也 南人用竹 北人用杞柳為之 – 본초강목

**** 杞柳, 生水傍 葉粗而理赤 可爲車轂 取細枝作桮棬 似今‘누온버들’, 箕柳 – 물명고

***** 杞柳, 누은버들, 取其細枝 令火逼柔屈作箱篋 - 광재물보****** 顧悅與簡文同年 而髮早白 簡文曰 卿何以先白 對曰 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柏之質 經霜彌茂 - 세설신어世說新語

+표지사진 - 키버들, 2017.4.2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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