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병 씨 수영장에 가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나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으면, '아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물장난만 했지, 수영을 배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물론 부모님도 수영을 못하고 나에게 그런 고급진(?) 레저 스포츠 따위를 교육시킬 생각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러한 수영은 자연스레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들어왔고,
서른 살이 넘어서 겁도 없이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첫날, 수영장 물만 보고도 가슴이 막히는데 이건 무엇인가?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상급반, 연수반, 마스터반
실력을 실감하게 하는 푯말 들이 날 주눅 들게 한다.
마흔이 다 되도록 수영을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반편성은 또 왜 이리 많은 건지.
수영 계급제에 좌절 한 땀 추가.
남들과 다르게 나는 6개월이 지나도 기초적인 자유형도 터득하지 못했다.
아, 이 놈의 몸댕이. 이래서 조기교육, 조기교육 하는가 보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남들과 다르게'
여기서부터 조바심이 생겼다. 잘하고 싶었다.
수많은 반편성을 보니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잘하려고 하니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세요 힘을
선생님, 저도 그러고 싶다고요,, 아놔.
내 마음은 더욱 조금 했고, 그럴수록 더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하나둘씩 자유형을 터득해 갔다. 우리 반에 나만 빼고.
이미 같이 시작한 사람들은 중급반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나는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고, 늘 뒷사람에게 쫓기듯이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
힘을 주니, 힘이 들었다. 힘이 드니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내 삶처럼.
어느 날인가, 아무도 없는 토요일 수영장을 찾았다.
목욕탕에 왔다는 마음으로 물 위에 엎드렸다.
편하게 엎드린 채 손을 돌리니 물 위의 기름처럼 내 몸뚱이가 미끄러졌다.
힘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물살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물살을 타는 느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 그랬다. 힘을 뺐어야 했다. 수영을 할 때도, 내 인생에서도 말이다.
힘을 주니 힘만 들고 늘 지치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나날들
'팔을 이렇게 허벅지까지 쭉 뻗은 후, 얼굴을 내밀고 호흡하세요.'
'이때 발은 발차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고요'
'앞으로 나갈 때 시선은 약간 앞, 몸은 유선형을 유지하세요.'
팔, 다리, 고개, 숨쉬기 등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척척 안되는데,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다양한 역할로 살아가는 내 인생이 제대로 작동할리 없다.
아니 항상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 팔 돌리다 보면 발차기 까먹는 것처럼
회사 일 고민하다가 아내 생일을 잊는..(차라리 수영장에서 익사를)
수영은 책으로나 영상으로는 배울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오직 물속에 내가 직접 뛰어들어가야지 비로소 배울 수 있다.
책으로 읽고, 눈으로 봐서 익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늘 인생을 책으로 읽고, 유튜브로 보려고 한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수영 좀 배웠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는 저 세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파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그리고 바닷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말한다.
좀 배웠다고 까불지 마라
수영은 나에게 인생의 철학을 선물한다.
나는 그렇게 겸손히 물 밖의 내 삶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