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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Sep 08. 2021

가을은 짧지만 추억은 길다

그래도 우리는 추억을 가지고 왔잖아

"아빠 몇 분 남았어?"


똑같은 질문을 스무 번쯤 받았을 때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강원도 시골집


가을은 모든 잎이 꽃피는 두 번째 봄이라고 했던가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 Alber Camus(알베르 카뮈) -


꽃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을에는 단풍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긴다. 한없이 푸르르던 나무들은 어쩌면 저마다 다른 색을 내며 변하는 것 일까?


자연은 아름답고도 신비롭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 휴대폰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자극에서 멀어질 수 있다.  지구라는 이 신비로운 행성에서 어찌 작은 사각상자에 빠져 있을 수 있겠는가?


"저기 저 오솔길을 지나면 드디어 도착이다! "


진돌이와 진군이 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한다. 10년 전 아기였던 강아지 두 마리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둘은 어느새 뉘엿 흰머리가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사실은 원래 둘 다 털이 흰색이다 :)


장독대에서 풍기는 된장냄새가 푸근함을 준다.


아들은 거미 관찰에 여념이 없다.  풍성한 가을의 계절엔 거미에도 풍년이다. 아마도 거미의 배가 잔뜩 불러 있는 것을 보니 점심식사가 푸짐했나 보다.


딸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가을꽃을 관찰하고,  

나는 키보다 더 커다랗게 자란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수염을 만져본다. 빗질이 안된 할머니 파마머리. 순간 할머니 생각에 잠시 잠겨보았다 이내 곧 현실로 돌아온다.


문득 아이들을 불러 놀이를 만들었다.

 "얘들아, 우리 자연에 있는 재료로 우리 가족을 만들어 볼까?"

"좋아"


우리는 밭에서 나무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돌 위에 옥수수수염을 가져와서 머리를 만들자 아이들은 신나서 이것저것 모아 왔다.


옆 집에서 수확 중인 고추를 하나 빌려 엄마의 입술을 만들었다. 아들은 정체모를 열매를 주워와서 눈을 만들었다.

 

딸은 단풍잎으로 입을 표현했다. 그리고 눈썹, 예쁜 꽃 장식까지 완성~ 소꿉놀이로 엄마 흉내 아빠 흉내를 내어본다.


정 과장, 얼렁 설거지나 해
(얘들아 제발 ㅠ)


저녁 메뉴는 매운탕이다.


앞에 있는 강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잡았다.

팔다리 걷어붙이고 들어간 강물은 시원했다.

소소하게 잡은 물고기가 제법 되었을 때였다.


"어이쿠"

그렇게 미끄러졌다.


풍덩하며, 그동안 잡았던 고기를 다 놓쳐버렸다.

아이들은 하하 호호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에라 나도 그냥 웃음이 나왔다.


수억 년을 살아온 자연 앞에서 우리 모두는 영락없는 아이가 아닐까


그렇게 잡을 고기를 다 놓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무의식 중에 중얼거렸다.


"고기도 다 놓치고 바구니는 텅 비었네. 엉덩이만 아프고 이게 뭐람.."


아빠 괜찮아,
그래도 우리는 추억을 담아 왔잖아


딸이 던진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야, 근데 너 진정 초등학생 맞아?"


누구 딸 아니랄까 봐.

초등학생에게 제대로 한 수 배웠다.

그때부터 지금 이곳에서 자연의 풍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귀에는 풀벌레 오케스트라를

그리고 코로 맡은 된장냄새를 한 가득 가슴에 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늘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를 보았다.

쉴 때도 부질없는 뉴스 기사를 읽느라, SNS를 하느라 눈이 피곤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이 늘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푸근함을 선물한다. 

그리고 눈과 귀를 뜨이게 해 주었다.

다음날 새벽에 혼자 나선 길에 만난 풀잎에는 이슬이 한 가득이었고, 편백나무는 스쳐가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편백나무의 벗겨진 껍질 안에는 다시 새하얀 속이 빛나고 있었다.


근심과 걱정은 잠시 비워두기로 해요
여러분들은 오늘 무엇을 담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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