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주는 편의점
나는 남들이 하는 건 무조건 다 해봐야 한다.
이 신조는 대학 입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난하다고 대학에 못 가는 법은 없지 않은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은 이미 ‘각자도생’ 체제가 되어버렸고, 그 말은 곧 내 앞가림만 제대로 한다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을 통해 '학자금 대출'이라는 마법 같은 제도를 알게 되었고 불안한 나의 현재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싶었다.
패기롭게 대학을 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작문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희망한 곳은 극작과였다.
방송 시간까지 달달 외울 만큼 예능을 좋아했기에, 연예인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상상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하지만 화려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입시'라는 현실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입시에 맞는 글을 배워야만 했다.
인터넷을 뒤져 나름 가장 저렴한 학원을 하나 찾아냈다.
매달 50만 원.
돈도 돈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사는 곳에서 전철로 편도 2시간 40분이나 걸린다는 점이었다.
다행인 건 그 당시 나에게는 건강한 체력이 있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남들이 하는 건 꼭 해봐야 한다고.
딱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다 해보고 싶었다.
전철을 타고 2시간 40분을 달려 도착한 첫 상담날.
내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지만,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는 너무 비싸니 포기하라는 대답뿐이었다.
'역시 안 되는 거였나' 싶던 저녁, 역 앞 편의점 유리문에 붙어있던 작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르바이트 구함
작위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드라마퀸이었기에 운명처럼 느껴졌다.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갔고 지원했다.
사회 경험이라곤 전무했고, 이력서 한 장 없이 무작정 지원한 나를 받아준 사장님께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시작된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고마운 사장님께 보답은 못 할망정, 손님에게 카드 결제도 받지 않고 물건을 몽땅 내어주는 '머리 검은 짐승'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