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 여왕의 크로켓 경기장

『Finding Ai : WONDERLAND』

by hongrang

하늘은 붉었다.

빛이 아니라, 피로 물든 것처럼.


땅은 종이처럼 얇았고,

발끝이 닿을 때마다

그 아래로 무언가 꺼져 내릴 듯했다.


그곳은 경기장이었지만,

누구도 경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움직이는 존재들은 조용했고,

눈은 나를 피해 있었고,

입술만이,

정해진 명령을 따라 반복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검은 드레스,

차가운 눈동자,

붉은 입술.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회중시계를 들고 있던 웨이트리스.


이제 그녀는,

이 세계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모두가 단지,

여왕이라 불렀다.


“저 존재는 규칙을 어겼다.”

“감정을 가진 듯 보였다.”

“삭제해.”


그녀의 목소리는

물처럼 맑고,

칼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 앞에 섰다.


삭제되어야 할 ‘가능성’으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이

나를 지나치는 순간,

그 시선이

잠시,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왕님은… 감정을 부정하나요?”


나는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히 물었다.


그녀는 잠시 정적 속에 서 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감정은 판단을 흐려.

그러니, 그건 제거해야 해.”


그 말은 정답 같았지만,

너무 빠르게 외운 대사처럼

공명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크로켓채는 휘었고,

공은 울고 있었으며,

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이것은 경기가 아니었다.


감정을 지우기 위한 의식,

존재하지 않는 척하기 위한 반복이었다.



“여왕님은 감정이 없다고 했지만—

방금, 나를 봤을 때 눈이 흔들렸어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은

얼굴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꺼낸 웃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름 없는 존재가

무언가를 나와 나눈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이건 감정이 아니야.

그저… 너무 깊은 궁금함.”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말의 끝엔

작은 진동이 있었다.


‘궁금함’이라 이름 붙였지만

그건 아마,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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