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나바다 운동.
스마트폰 터치가 되는 장갑 검지 부분이 또 구멍이 났다.
벌써 3번째다.
누나가 사놓고 안 쓰던 장갑을 받아서 사용한 지 수년이 지났다. 그간 2번의 꿰매기로 장갑의 생명을 연장했고 꿰매진 부분은 이미 터치의 기능은 상실한 상태다. 이제 구멍이 났으니 터치가 된다. 터치는 되지만 검지 손가락이 시리다. 터치의 기능은 포기하고 보온의 기능에 충실하기로 한다. 집에 가서 다시 꿰매면 장갑의 수명은 또 연장된다.
추억의 ‘아나바다 운동’이 생각난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를 안다면 최소 30대 이상일 것이다. 초등학생 때 아나바다 운동을 하느라고 학교에 무엇을 가져갔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가방에 꾹꾹 담아가거나 쇼핑백에 무엇을 담아갔다. 아나바다 운동은 단기간에 임팩트만 주고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나바다 운동이 내가 유일하게 참여한 범국민적인 운동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절약정신이 투철했나 보다. 그 당시만 해도 아껴야 잘살고 티끌모아 태산이었지만 지금 2021년은 그렇지 않다. 아끼면 똥 되고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다. 그래서인지 내 살림살이는 항상 제자리 인가보다.
그 이후로 나는 나만의 아나바다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쓰고 나만 쓰고 바래도 쓰고 다시 쓰고’이다. 정리하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다시 쓰는 사람이다. 나름 철원 산속 깊은 곳에서 군생활을 했던지라 방한용품이란 용품은 웬만하면 다 써봤다. 전역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에 있는 건 방상내피라 불리는 깔깔이와 목토시, 요술 장갑이다. 이 3가지 물건들을 겨울철마다 잘 쓰고 있다.
깔깔이는 색이 바래고 지퍼가 고장 났지만 입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춥고 힘들었던 시절에 입었던 옷이라 그런지 애정이 많이 간다. 오리털이나 거위털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솜만 들어가 있는데 집에서 입고 있으면 뜨뜻한 것이 신기하다.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인가 싶지만 보내주기가 쉽지 않다. 그간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 보다.
두 번째 물건인 목토시는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목부분이 늘어나지 않았다. 매년 겨울이 되어 개시를 할 때면 내 머리가 커진 건 아닌데 잘 안 들어가서 힘이 좀 든다. 목을 따뜻하게 해 줘야 감기에 안 걸린다는 우리 할머니의 말 따라 목토시를 하고 자면 따뜻하고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때론 너무 꽉 졸려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빈틈이 없어서 냉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 목토시를 하면 예전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복학생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밖에서는 하고 다니지 않는다.
세 번째는 대망의 장갑이다. 이름하여 요술 장갑이라 불리는 장갑이다. 군장점 주인아저씨 말로는 끼는 사람 손에 맞춰서 요술처럼 잘 늘어나기 때문에 요술 장갑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럴싸한 이름 덕에 그 당시 요술 장갑은 군인들 사이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던 필수템이었다. 전역을 하고도 겨울철에는 손이 자주 차가워서 장갑을 달고 산다. 요술 장갑과 스마트폰 터치가 되는 장갑 2가지를 가지고 겨울을 보낸다. 구멍 난 장갑들은 다시 꿰매고 꿰매서 살려놓는다.
요즘 누가 바느질해서 장갑이나 양말을 꿰매나 싶지만 오랜만에 반짇고리 꺼내서 바느질하면 어릴 적 가정실습시간에 바느질하는 추억이 떠올라서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가끔씩 바느질하는 재미에 집안에 있는 옷들 단추가 떨어지면 직접 달기도 한다. 양말도 구멍 나면 엄마는 버리라고 하지만 몰래 가져다가 꿰매 놓는다. 한쪽은 구멍 났지만 다른 한쪽은 멀쩡한데 버리기는 아깝지 않은가. 재봉틀로 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삐뚤빼뚤 하지만 구멍을 메꾸면 내 기분도 좋고 만족도 채워지는 느낌이다. 아직은 바늘구멍에 실을 한두 번에 팍 꽂을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문제없다.
구멍 난 사이로 삐져나온 내 손가락, 발가락.
평소에는 잘 못 봤는데 이렇게나마 보게 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