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는 참 많이 걸었다!
2020년에는 참 많이 걸었다. 핏빗 Fitbit에 따르면 일 년 동안 2,988,736걸음, 하루 평균 8,188걸음을 걸었고, 걸은 거리는 2,112킬로미터이다. 하루 만보 걷기를 기본목표로 삼고 있지만,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많이 걷는 편인데도 점심을 먹고 잠시라도 나가지 않으면 하루에 오천 보를 채우기도 힘들었다.
3월부터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만 있으면 하루에 천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다행히 출퇴근 시간이 줄어서 일을 마치고 여유 있게 공원을 걷고 올 수 있었다. 주말에는 가끔 집에서 칠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는 걸로 하루를 채우곤 했다.
같은 공원을 계속 가다 보니 집에서 공원 입구까지는 몇 걸음에 갈 수 있는지 공원을 이렇게 저렇게 돌면 몇 킬로쯤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 시간만 걸으려면 이렇게 돌고, 한 시간 반을 걸으려면 어떻게 돌아야 하는지 코스를 짜기도 하고, 보폭을 넓혀 보기도 하고 빨리 걸어서 시간을 줄여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날은 음악을 들으며 생각 없이 천천히 걸었다.
잘 걷는 편이었지만, 운동을 위해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다가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도 기본적으로 '걷기'지만 경사가 있는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라서 '힘든 걷기'다. 산을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다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도 있고, 나름 운동도 꽤 된다. 등산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이었다. 살면서 하는 많은 생각들이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냥 걷게 된다.
걷는 동안 내 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단순해지는 것을 산타이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경험했다. 2014년은 인생의 남은 하프타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나이가 막 되었던 해였다. 현실적으로 그해부터 휴가가 한 주 더 늘어서 그 전해에 일부러 쓰지 않고 남겨놓은 휴가까지 몽땅 끌어모아 순례길에 필요한 시간을 만들어서 길을 나섰다.
780킬로미터 순례길은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길은 스페인을 가로지르며 여러 도시와 마을로 이어지고 있었다. 포도밭도 보고 말라버린 해바라기 밭도 보았다. 그늘 한 조각 찾기 어려운 고원도 걷고 산을 넘기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걸었고 비가 오는 날에도 걸었다. 아침마다 배낭을 꾸렸고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걷다가 다른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또 걷다 보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씻고 옷을 빨고 저녁을 먹고 자는 하루하루를 반복했고 삼십 이일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걷는 것이 좋아져서 걷기 위해 더 자주 여행을 떠났다. 잉카 트레일을 걷기 위해 페루를 여행했고,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한 바퀴 도는 서킷 트레일을 걸었고, 그랜드 캐넌의 협곡으로 내려가 톤토 트레일을 걸었다. 세 번의 트레킹 모두 쉽지 않았다. 잉카와 안나푸르나에서는 고산증으로 고생했고, 그랜드 캐넌에서는 더위 때문에 힘들었다. 어려움을 껴안고 걸었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휴가에 그 트레킹을 되돌아보면서 기록과 사진들을 찾아 글로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그곳들을 다시 여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