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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 moon Sep 07. 2022

두번째 도망, 퇴사

조각 모음집 04 | 퇴사의 주가 밝았습니다.


퇴사하기 일주일 전 즈음부터는 일이 굉장히 여유로웠다. 떠날 사람이라 그런지 내겐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고, 기존에 하던 루틴한 업무만 쳇바퀴 돌 듯 해낼 뿐이었다. 퇴사를 하지 않았으면 나도 했을 법한 벅찬 업무들을 헤쳐가고 있는 동료를 보며 안쓰러움 반, 미안함 반의 마음을 가지고 지루한 업무 시간을 보냈다.


커뮤니케이션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퇴사를 앞두고 작은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내 직무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소통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게 가장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곧 보지 않을 사이라고 생각하니 소통이 쉬워졌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 더 당당하게 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퇴사를 앞두고 그 점은 참 편했다. 겁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던 것. 긴장을 조금만 놓으면 되는데 그걸 이제서야 알게 되어 조금 아쉽기도 했다.


퇴사 전 날엔 동기들끼리 모여 점심을 먹었다. 익숙한 식당에 익숙치 않게 예약을 걸고 들어가 앉았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동기들은 어색하게 근황을 나누고 나의 퇴사를 부러워했다. 사실 난 그들이 부러웠다. 퇴사 던져놓고 혼자 머리 빠지게 고민하고 있는 바보보단 차라리 용기를 내지 않고 버티는 쪽이 더 현명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나 나의 선택에 자신이 없었다. 퇴사가 가까워지면 기분이 좋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정해진 목적지 없이 던진 퇴사라 그런지 퇴사일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과 불편함이 커져만 갔다. 성격 탓인지, 원래 이직처가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이런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일 밤잠을 설칠 정도로 불편함이 아주 컸다. 쉬어가겠다고 다짐해놓고 나는 달릴 준비가 되지 않음에 불안해했다. 역시 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구나,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한 주간 많은 축하와 눈물을 받았다. 퇴사가 아니었으면 몰라봤을 마음들이었다. 이별하기에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지막이기에 알게 되는 진심들이 있다. 참 다행이었다. 그래도 내가 마냥 못난 사람은 아니었구나.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진심들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눈물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웃으며 굿바이, 퇴사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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