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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Jul 10. 2022

# 1. 소소한 챙김들이 나를 살게 한다.

봄과 여름의 중간, 6월이다.

영주의 나이는 25살. 20살과 30살의 중턱에 걸쳐 있다. 영주는 서른이 된다는 것은 농익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덜 익어서 맛없는 풋과일처럼 25살의 나는 열매는 맺었지만, 어디에도 진열될 수 없는 완전체가 아니다.' 영주는 그렇게 생각한다.


영주는 3년을 작가로 살았다. 여기저기 플랫폼에 연재를 하고, 각종 공모전에 도전했다. 종종 수상도 했지만, 그렇다고 큰 변화는 없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영주에게 허락된 공간은 고작 7평이었다.

서울 변두리 7평의 낡은 원룸이 온전한 영주만의 공간이다.


영주는  쓰는 게 좋았다. 쓰기 위해 살아가고 돈을 벌어야 했다. 편의점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자투리 시간에는 글을 썼다. 자투리 시간이라고 해서 영주에게 글 쓰는 일이 가벼운 취미는 아니다. 일하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영주의 시간들은 글 쓰는 일에 잠식되어 있다. 어느 날은 몇 시간씩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나면 허리가 쑤셨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다 쓴 원고가 영 맘에 들지 않아 삭제해 버린다. 그러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시달린다.

분명 글을 쓴다는 것은 노동이다.

하지만, 영주에겐 즐거운 노동이었다.


영주의 글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고, 더욱이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다.

그냥 쓰는 순간 살아있는 것 같았다. 쓰는 순간만큼은 타의에 의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구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서울 변두리 7평의 원룸, 매달 4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했고 공과금을 내야 했다. 그리고 생활비도 필요했다.

영주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사실 문창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틀에 짜인 커리큘럼 속에 4년을 갇힌다고 생각하니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녀는 '창작의 자유'를 얻고 싶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주는 작가다.

하지만, 매년 신춘문예에 수상작들이 발표될 때마다 자신의 오만을 후회했다.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문예창작과 출신이었으니까. 그들의 수상작을 읽으면서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결국 글 쓰는 일도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혼자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문예창작 전공을 한 사람들은 서로 합평을 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글이 무르익어간다. 결국 영주가 선택한 '창작의 자유'는 외로움이라는 감옥이었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말이 진부한 것만이 아니었다.


영주는 원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편의점 점주 폐기된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함께 먹다. 

폐기 도시락이 하나밖에 없을 때는 영주에게 새 도시락을 먹였다. 영주는 괜히 미안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점주는 한사코 폐기 도시락을 본인이 먹었다.

덕분에 식비가 많이 들지 않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어느 날 편의점에 슈트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제법 멀끔하게 생긴 남자는 캔맥주와 얼음컵을 계산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남자는 저녁 7시 무렵이면 편의점을 찾았다. 그리고 항상 캔맥주와 얼음컵을 사 갔다.

"작가예요?"

남자가 계산대 앞에 서서 말했다.

"아뇨."

영주는 바코드를 찍으며 대답했다.

"매일 뭔가를 쓰시는 것 같덴데......"

남자는 영주 앞에 놓인 노트북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영주는 글을 쓴다는 말 대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주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무슨 책을 냈냐, 인세는 얼마나 받냐...... 는 질문을 해온다. 영주는 그런 질문들이 공격처럼 느껴진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으니 영주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뒤로 영주는 사람들의 질문에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띡 띡 띡 -"

남자가 계산을 마치고, 바나나 우유 하나를 영주 앞으로 밀어 놓는다.

영주가 눈만 껌뻑거리며 멀뚱히 서 있자, 남자가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드세요."

남자는 영주가 대답할 새도 없이 편의점을 빠져나간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자신이 딱해 보였나?라고 영주는 멋대로 생각했다.

불편한 호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7시, 남자가 들어온다.

"띡 띡"

"이거 가져가세요."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한 후 영주가 지갑에서 1,500원을 꺼내 남자에게 내민다.

"이게 뭐죠?"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서 있다.

"저번에 주신 바나나우유 값이에요. 제가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영주는 야무진 표정을 하고 당차게 말했다.

"꼭 이유가 있어야 뭘 주고받는 건가요? 난 원래 그래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꼬마,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 사장님,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님...... 그 사람들한테도 종종 그래요."

"기분이 별로였다면 미안해요."

남자는 영주가 건네 준 1,500원을 들고나갔다.

괜한 자격지심이었다고 순간 영주는 생각한다.

갑자기 노트북에 쓰고 있는 글이 1,500원보다 싸게 느껴졌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주제에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1,500원으로 그날 받은 불편한 호의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 남자의 말과 행동이 영주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머릿속 회로들을 끊임없이 펌프질하고 있다.

편의점 점주님이 주는 폐기된 도시락은 육신을 살게 하고, 낯선 손님의 바나나 우유는 정신을 흔들었다.

그렇게 소소한 챙김들이 나를 살게 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것처럼 신선한 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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