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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Jul 11. 2022

# 2. 기록하는 자의 끝은 무언가가 되어 있다.

영주가 일하는 편의점 근처에 다른 편의점이 생겼다. 손님들의 발길이 줄었고,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한숨을 내쉬는 점주의 얼굴이 어두웠다.

"영주 씨, 잠깐 얘기 좀 할까?"

그 한 마디에 눈치 빠른 영주는 조용히 점주 곁으로 다가갔다.

"영주 씨도 알겠지만, 편의점 사정이 많이 안 좋아졌어. 그래서 말인데, 근무시간을 좀 조정해야 할 것 같아. 영주 씨 사정을 뻔히 아는데, 정말 미안해."

점주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전 괜찮아요."

영주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밤 영주는 구인광고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7평의 온전한 공간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했다.

카페 정직원을 구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 카페 구인광고는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초보도 환영'이라는 문구가 영주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다음 날 영주가 카페 면접을 보러 갔다. 작은 북까페였다.

영주는 책장에 빼곡하게 진열된 책들을 보고 두근거렸다.

"책 좋아해요?"

두리번거리는 영주를 보고 카페 사장이 물었다.

"아, 네."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저 진짜 초보예요."

영주는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능숙하게 일하는 것도 좋지만, 전 성실하게 일할 사람을 원해요."

"다 경력자만 원하면 초보자는 어디서 일을 배우죠? 초보자가 경력자가 되고 다 그러는 거지."

사장의 말에 영주는 환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사장님, 혹시 이 책 읽어 보셨어요?"

교복을 입은 학생이 빨간 표지의 책을 들고 묻는다.

"글의 품격? 아직 안 읽어 본 책인데?"

사장이 그 책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 책!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가 쓴 책이야. 책 문장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때론 관찰이 사람 사이에 있는 허공과 우주를 틀어막는다. 어쩌면 일상에서 '관찰'이라는 스위치가 '딸깍' 하고 들어오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영주는 책 얘기에 흥분하듯 말했다.

"언니 얘길 들으니까 얼른 읽고 싶어 져요."

학생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저 학생은 우리 집 단골이야. 커피가 아니라, 책 때문에 오는 거야. "

"그런데, 영주 씨 책 많이 읽나 봐?"

사장은 빤히 영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쓰는 걸 좋아해요. 책도 좋아하고요."

영주는 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보나마다 취조하듯  질문해 올 걸 알기에.

"아 그래?'기록하는 자의 끝은 무언가가 되어 있다.'라는 문장이 있어. 꼭 작가만 글을 쓰는 건 아니지. 영주 씨도 무언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카페 사장은 좀 이상했다. 영주는 그런 모습이 낯설었지만, 마음이 편했다.

사장은 처음 본 영주에게 반말을 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참 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은 편의점 일이 정리되는 데로 출근하라고 했다. 영주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기대된다.

'기록하는 자의 끝은 무언가가 되어 있다.'

그 문장이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편의점 점주는 일주일만 더 일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과의 인연은 끝이 좋아야 한다.'

엄마는 어딜 가든 항상 마무리를 잘하라고 하셨다. 영주는 일주일 동안 더 열심히 일했다. 편의점 진열대의 먼지를 닦아내고, 분리수거도 철저하게 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유니폼을 벗었다.

"영주 씨는 어딜 가든 잘할 거야. 이렇게 돼서 미안하고,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이건 영주 씨 응원하는 마음에서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사장은 반으로 접은 하얀 봉투를 영주의 손에 쥐어 주었다.

"전 괜찮아요."

편의점 사정을 잘 알기에 영주는 손사래를 쳤다.

"나중에 유명한 작가 되면 모르척하기 없기다!"

점주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네며 방긋 웃었다.

영주는 가끔 기록의 끝이 유명한 작가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에서 영주는 기도한다.

유명한 작가가 되지 못해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해 달라고.

쓰는 일에 잠식되어 있는 일상이 쓰기를 멈춘다면 그 텅 빈 공간을 채울 자신이 없었다.

글쓰기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내 기록의 끝이 어떤 형상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아.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무언가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또 무언가가 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영주는 여러 가지 생각을 보듬고 편의점 문을 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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